================== 환생이야기 4 부 : 모델 나르시스의 시점 ========================== 나는 나르시스다. 물론 본명은 아니다. 올해 나이 25 . 세계 일류급의 톱 모델. 나는 혼혈아다. 반은 이탈리아, 반은 한국. 내 모델 이름은 나르시스. 그리고 내 본명은... ........그래, 탁 터놓고 말하지. 한국애호가 이자 이탈리아인인 우리 어머니께서 당당하게 살라고 지으신 그 이름은... "안녕하세요, 나 잘남씨. 오늘도 멋져보이네요." "예, 예에....메니저." 하여튼 내 이름은 나 잘남이고, 그런 이름으로 떳떳하게 살고있다. 하지만 내가 미쳤다고 이 이름을 쓰겠는가? 그런고로 나의 이탈리아 이름 [ 이자 가명인 ]인 나르시스로 부르도록! 하여튼 이 일이 어떻게 되었던, 나는 오늘의 정장 일러스트 촬영을 보람차게 마치고, 매니저의 악의없는 말 한마디에 지쳐버린 심신을 달래기 위해 바 [bar] 로 향했다. 빌어먹을, 본명으로 부르지 말라니까. 슬프게도 나의 매니저는 정말로 눈치가 없는 사람이었고, 그 덕분에 오늘도 정신적으로 손해를 보았다. 국내외 일을 전부 담당하는 3 명의 매니저 중에서 하필 저 사람이 오늘 올 줄이야. 빌어먹게도 새것이어서 뻣뻣하기 그지없는 정장을 입고 거의 5 시간동안 촬영한 뒤, 약간 피곤해진 몸으로 저런 소리까지 듣게 되다니. 나는 고개짓 두어번으로 회상을 날려버렸다. 어쨌거나 나는 정말로 잘났고, 그것이 나의 전부니까. 얼굴뿐이라 해도 좋다. 아, 물론 몸도 좋지. 이름대로 나르시즘이 있다고 해도 좋다. 그렇게 부른다고 해서 세계에서 5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모델인 내가, 꽤나 돈을 잘 벌어들이는 모델인 내가, 여자들을 데리고 떵떵거리며 잘 살아가는 내가,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다. ....으음....사실 나는 조금 나르시즘이 있다. 아니, 어쩌면 조금이 아닐지도... 하여튼간에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외모적 방면이든 재력적 방면이든 권력[?] 적 방면이든 나는 정말 잘났다는 것이다. 나는 부드럽게 차에 올라탔다. 한국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차. 하기야 내 돈들중 일부를 골라내 산 것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꽤나 돈이 많이 든 차라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에 본가를 가지고 있던 내가 [아버지가 한국계 미국인] 이 차를 두고 오기 아까워서 가지고 왔다면 믿겠는가? 거기다가 이번에 한국에 오면서 돈으로 꽤나 안쪽을 쳐발랐으니.. 어찌되었던 차는 비싼값을 하게 부드럽게도 움직였고, 나는 환하게 네온사인을 밝힌 밤의 거리로 들어섰다. 밤의 거리라! 정말 좋은 말이지. 차갑고 검은 공기, 화려한 네온사인. 가로등의 불빛 사이사이를 누비는 사람들의 움직임. 죽어버린 마네킹들이 살아나 밤의 퇴폐적인 공기안을 누비는 느낌. 삐걱, 삐걱. 겨울이 가까워져 옴에도 불구하고 짧은 스커트를 입은 여성들. 가을 파카안에 얇은 나시티를 입은 남자들. 밤의 화려한 불빛 안에 몰려든 나방들. 라스베가스의 거리보다야 못하지만, 그와 비슷한 서울의 번화가. 가로등의 노란 불빛. 나는 차를 술집 아래쪽에 위치한 주차장에 주차시켰다. 왜, 번화가에 주차장이 있냐고? 원래 지하나 뒤쪽에는 다 주차장 있다. 푸른색과 분홍색 네온사인으로 간판에 BIUE SEA 라 적어놓은 술집. 어제 지나가면서 눈도장을 해 놓은 술집인데 주차장은 술집치고 꽤 잘 해놓았다. 주차장에서 지하 1 층 술집으로 통하는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그때. 날카로운 노랫소리가 주머니에서 울렸다. 이런. 나는 휴대폰을 꺼내 위에 뜬 이름을 확인한 뒤 통화버튼을 눌렀다. "....예은?" [ 오늘 만나기로 한거 잊지 않았어? ] "음." 물론, 잊어버렸었지. [ 올때 장미 사와. ] 요구사항이 많군 그래. " 꽃집이 있으면 사오지." [ 뭐야, 아직 사지도 않은 거야? ] "방금전에 일 끝났어." 여자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휴대폰 안쪽에서 울린다. [ 그랬구나. 나는 또 그것도 모르고 다른 여자랑 놀고있나 했지.] 가슴 안쪽에서 뭔가가 살짝 갉작거리는 것 같군. " 내가 너를 두고 다른 여자랑 놀겠어?" 물론 놀았지. 그것도 많이. 내가 한국에 와서 사귀고 있는 여자들의 외모 순위를 최고부터 매겨보자면 예은은 10 미만이다. 그러니 다른 여자와 놀아나는 편이 더 낫다는 소리. 외모만 보냐고? 무슨소리. 외모야 다 거기서 거기지만 그래도, 매력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이 여자는 매력 부분에 있어서도 최하 였다. "나 지금 집이야. 이따가 보자." 집은 무슨, 개뿔이. 여기서 끊고 싶은 내 마음을 모르는지, 그녀는 키득키득 웃었다. [ 맨 처음 만났을때 생각난다. ] "음." [ 길 가는데 바람에 날려간 스카프를 잡아준 사람이었잖아. 외국인이어서 놀랐다고. ] 사실 혼혈이지. 국적은 미국이지만. "음." [ 한국어 못하는줄 알았는데 정말 잘하더라고... 거기다가 여자 꼬시는 소리까지. ] 여기서 끊자. 제발. 더이상 사생활이 까발려져서는 곤란하잖아? "....나 지금 씻는다. 끊어도 괜찮지?" [ 아, 씻는다고? 그럼 끊을게-] 통화가 끊어졌습니다 친절한 목소리가 대답해 왔다. --------------------------------------------------- ===================== 나르시스의 시점 ====================== 차가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롯데월드 정문 앞에 멈추었다. 자정을 반이나 넘긴 시각. 하지만 롯데백화점의 간판은 아직도 화려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 달칵 차의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볼을 붉게 물들인채 숨을 학학 내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왔어?" 그래. 나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장미는?" 그녀는 짧은 미니스커트를 단정하도록 쓸어내리며 차에 올라탔다. "구할 수가 없었어." 당연하지, 지금이 몇 시인데. 약간 짜증스러운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오래 기다렸어?" "응!" 그녀가 생긋 웃었다. 붉은 입술이 돋보이도록 입술을 약간 모으는 그녀의 모습에 짜증스러움이 밀려왔다. 입술에 립스틱 칠한것 다 알아. 화장을 아무리 정성들여 했더라도 모델 생활로 뼈가 굵어진... .....은 아니었지. 어쨌거나 모델생활로 장장 10 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낸 나에게는 당해낼수 없다 이거야. 피부관리라던가 화장하는것으로는 내가 고수라고. 나는 한쪽 눈을 약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군. bar 라도 가겠어?" 그녀가 렌즈를 낀 것이 분명한 검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대답했다. "어디? 좋은데 알아?" "음....글쎄." 조금전 명동에서 들렸던 BLUE SEA 라는 곳이 있지만, 사실상 주차장 까지 밖에 안 들어가 봤으니까. 그리고 그 곳은 너무 멀다. 내 사랑하는 부인 [ 지금 타고 있는 차 ] 을 더 고생시키느니 차라리 이 근처에 있는 주점을 가고 말지. 내 이런 마음을 아는지 그녀가 웃었다. "나는 좋은데 아는데." 손상될 정도로 탈색되고 곱슬거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보면서 물었다. "어딘데?" "명동쪽인데....BLUE SEA 라고...." ....혀를 깨물뻔 했다. 내가 지금 명동에서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또 가라고? 아니 그것보다 내 애마를 괴롭히고 싶은 거야 뭐야? 내 마음속의 저울에서 그녀의 점수가 깎일대로 깎여나가는 것을 느끼고 있을때, 그녀가 웃었다. "거기 진짜 좋은데, 한번 가 보자." "...." 여자에게 살인을 저지르면 안 되지. 아니, 그것보다 내 평판이 깎인다고. 저런 여자따위에게 폭력을 쓰면... 폭력을 행사하고 싶은 마음과 그것을 가로막는 마음사이의 저울질이 격렬하게 일어나며, 내 머리에 지끈거리는 통증을 유발했다. "한번 가 보자. 그쪽에서 있는 가수가 정말 노래를 잘 한다구!" 가수? .....칵테일 바에? ....그렇다면 이류 삼류 가수이리라. 일류 가수는 모두 외국으로 빠졌으니까. 아니, 어쩌면 삼류도 못 될지도... 그런데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보나마나 저 여자때문에 짜증이 생겨서이리라. 하지만 여기서 본색을 드러낼수는 없는 일. "...원한다면, 그곳으로 가도록 하지." "정말? 고마워-" 차가 거칠게 커브를 돌아, 서울의 중심가로 통하는 다리로 접어들었다. =============== 한참 뒤 푸른 빛. 푸른빛의 스포라이트가 무대 위에 일렁거린다. 바다속으로 들어간듯한 느낌의 술집. 입구에서부터 푸른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느낌이다. 우리는 입구에 서서 잠시 안쪽을 쳐다보았다. 아직 비어있는 무대. 무대를 중심으로, 사람이 가득 찬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그때, 오른쪽에 위치한 바에서 웨이터가 걸어나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저 안쪽에 자리가 있습니다." 귀를 잔뜩 뚫은 웨이터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음." 하얀 백발이라...특이하군. 웨이터에 안내되어 온 자리는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테이블이었다. 의자에 앉기가 무섭게 웨이터가 물었다. "무엇을 드릴까요?" 그의 까만 앞치마 앞에 달린 명찰이 스포라이트의 불빛에 잠시 반짝거렸다. "블루 하와이요." 옆에서 갑자기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에 잠시 흠칫했다. 잊어버리고 있었군. 저 여자와 같이 왔었지. 파란 불빛으로 잠시 식혀졌던 짜증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손님은 무엇으로?" 하얀 머리카락의 웨이터가 물었다. "....같은 것으로." 나는 웨이터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무대에는 아직도 푸른 조명만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 성적표의 절망;ㅁ;.....빌어먹을 영어! .....꼬릿말이 30 개를 간신히 넘겨서 슬퍼요ㅜㅡ 하지만 ... 올려주신 분들 모두 사랑해요/♥/////////// ============== 나르시스의 시점 ======================== 투명한 블루 하와이가 탁자에 놓이는 순간, 무대 아래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 놈은 어딨는 거야?!" "당장 전화 해 봐!" "아, 펑크낼 셈인가? 얼른 전화 해!" "저 지금 손님들이-!" 하얀색 머리카락의 웨이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시끄러운 소리와 나무가 아작나는 듯한 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무대의 하늘색 스포라이트가 정중앙으로 모였다. 그리고...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걸어나온다. 아니, 무대를 걸어 올라갔다. 작은 무대에 올려져 있는 드럼과 기타, 드럼에 기대 서 있는 베이스가 무색하리만치 무대에 올라온 이는 현실감이 없었다. 여자의 작은 탄성 소리가 들린다. "원래 저 사람 아닌데..." 무대에 올라온 이의 하늘색 머리카락이 흰 빛 옷에 잘 어울렸다. 푸른 칵테일, 푸른 조명. 파란 벽과 하늘색 테이블보. 진한 남색으로 칠한 드럼과 블루블랙의 기타. 탁자에 올려진 하늘색 넵킨. 심지어 마이크 조차 옅은 하늘색을 띈 은빛이다. 하지만, 무대에 올라온 이는 더욱 하늘색에 가까웠다. 물빛의, 금방이라도 물이 뚝뚝 떨어질듯한 머리.... .....가 아니라, 실제로 떨어지고 있군. 흠, 흠. 무대에 올라와서 마이크를 쥔 사람은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얼굴의 소유자였다. 적으면 15 세 부터 많으면 25 까지 잡아 볼수 있을 듯한... 그가 입을 열었다. "....아, .....아아...." 뭐라고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긴 한데... 저래서야 도무지 의사 소통이 안 된다. "...아으...." 그가 입술을 살짝 벌리며 애타는 시선으로 하얀 머리의 웨이터를 쳐다본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시선에 웨이터에 쏠렸다. 웨이터는 고개를 저으려는듯 약간 꺾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무대에 올라왔다. "손님 여러분." 하늘색 머리의 청년[ 아니면 소년? ] 의 손에서 마이크를 건네받은 그는,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항상 저희 BLUE SEA 에서 노래를 불렀던 B.D. 씨께서 마음대로 펑크를 내셨답니다." 뭔가 악에 받친듯한 말투인걸. "...그러시면서 얼마전에 노예로 구입하셨다는 녀석을 대타로 보내오셨습니다." 노예? 노예게임을 말하는 건가? 그 옆에 서 있던 어린 [ 청년이라 불러주기도 미안해질 정도로 어린 ] 청년이 바들바들 떨었다. "사실 권력 남용이지만 빌어먹게도 이 칵테일바는 조직의 마수 아래에 있는 지라 차마 설명 드리기 어려운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 여기서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런데 건전한 겉모습과 달리 속은 조잡하기 그지없는 술집이군. "....어쩔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부디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아래로 내려간다. 위에 홀로 남은 소년은 도와줄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소년의 커다란 눈동자가 떨렸다. 그의 간절한 눈동자를 무시한 채, 스포라이트가 그를 훑고 지나가며, 전주가 시작 되었다. 높고 낮은 음이 연속적으로 들려오다가, 고요한, 그리고 잔잔한 파문이 일듯이 음악이 부드럽게 밀려나왔다. When you wish up on a star Makes no diffrence who you are Anything your heart desires will come to you 디즈니의, 피노키오에 나오는 곡이다. 가사가 1 절의 반이나 흐렀음에도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무대 뒤쪽에서 나무가 부셔지는 소리가 들리자, 움찔하며 입을 살짝 열었다가 닫았다. 그는 소년인가, 아니면 청년인가. 연한 하늘색의 머리카락, 어린아이의 눈동자 같은 순진하고 커다란 밤 하늘빛 눈동자.. 일반 여성들보다도 작고 마른 체구인 그의 몸을 감싼 헐렁한 하얀 니트가 마이크를 조금 치켜올리는 그의 움직임에 어깨 아래까지 흘러내렸다. 누가 봐도 그의 몸에 전혀 맞지 않는 그 모직물 사이로 그의 가느다란 허리가 설핏 비쳤다. 거의 무릎까지 내려온 니트의 아랫부분... 그리고 몇번이나 접어올린 소매. 옅은 갈색의 진도 품이 넉넉하기 그지없다. 그의 귀에서 작은 원통형의 유리귀걸이가 반짝 빛을 발했다. 그는 푸른색 칠을 한 마이크 손잡이를 꼭 움켜쥐고 입을 작게 달싹였지만,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불만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말이 나오지 않는지 잠시 멈췄다가 작은, 너무나 작아서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the sweet full ment of their secret long thing..... 거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그 작은 속삭임에, 사람들 중에서 과격파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콰앙- 그의 몸이 무대 아래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소리도 없는 신음. 바닥에 추락하는 충격으로 완전히 드러난 그의 하얀 팔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쏠렸다. 연한 하늘색의 머리카락이 산산히 부쉬어 지는 것처럼 격하게 흔들렸다. "뭐야, 이런 놈이 노래를 해?" 그를 바닥에 패대기 친 남자가 그의 멱살을 잡고 그를 들어올리며 거칠게 흔들었다. "벙어리 아냐? 소리도 못 내잖아?!" 사내가 그의 멱살을 바싹 움켜쥔다. 그는 눈을 감고서 몸을 떨고만 있다. "이런 침묵의 노래 들을려고 여기까지 온 줄 알아? 엉? 비싼 돈 내어서 여기까지 온 줄 아냐고! 노래를 못 하면 아예 노래를 부르지 말던가! 왜 와서 난리야?" 지켜보고만 있던 관중들이 동조한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여자도 미친듯이 소리지른다. "왜 무대엔 올라가고 지랄이야!" 정말로 다들 미쳤군. 그의 가냘픈 몸뚱이가 다시 바닥으로 추락한다. "완전 병신 아냐? 이거?" 바닥에 세게 부딪히고도 몸을 웅크릴뿐 신음을 내지 못하는 그를 보면서 사내가 잇새로 내뱉었다. 아직도 술집 안에는 지미 크리켓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 나르시스의 시점 ========================= 그의 팔이 간신히 바닥을 짚었다. 그리고 몸을 반쯤 일으켰다. 그리고 .... ......하아, 다시 픽 쓰러진다. 그런데... 지금 입에서 흘러내린거, 분명 피 맞지? 바닥에 부딪힐때 입술이 부딪힌 건가. 사내가 그의 몸을 발로 다시 밟았다. "이거 사내새끼 맞아?" 그가 잇새로 나지막히 내뱉었다. 그 말에 사람들은 모두 큭큭거리며 웃었다. 지미크리켓의 노래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하늘색 머리의 청년이 고개를 약간 꺾었다. 그리고... ======================= .....내가 왜 이랬는지 모르겠다. 이건 단지 그가 내 눈을 향해 최면을 걸었기 때문이다! 으음...그런 동그랗고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고이면 충분이 최면을 걸수 있....는게 아니라! 이런 생각까지 하다니, 나도 미친걸까. 나는 속도를 더 내면서 그를 흘낏 쳐다봤다. 후우....그런 청순한 얼굴로, 하얀 얼굴에 피가 흐른채로, 그것도 눈물을 흘리면, ...아니, 거기까진 좋아. 하지만 왜 나를.... 왜 나를 그렇게 처량한 표정으로 쳐다본 건데! 하기야 그런 애절한 눈망울에 홀딱 넘어와서 그를 밟고 있던 사내를 밀어버리고 그를 일으켜 세워, 그대로 [술값도 안 내고] 술집에서 튀어버린 나도 참 나다.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던 [물론 한국이름은 아니다] 여자의 찢어지는듯한 고음이 귀에 남아 쟁쟁 울렸다. 내가 어쩌자고 이런 어린 애를. 거기다가 남자를. < 그게 더 중요한듯 > 그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푹 숙인채로 열심히 나를 쫓아오고 있다. 약간 뒤로 쳐지는 것을 보니 힘든 것 같기도 한데. 그의 귀에 매달린 유리 귀걸이가 거리의 네온사인을 받아 투명하게 빛났.... ...자, 잠깐. 거리의 네온 사인...? 그래. 내가 지금 열심히 달리기 연습을 하고 있는 곳은 거리. 예쁘장하기는 하지만 슬프게도 남자 라는 생물인 한 꼬맹이의 손목을 잡아 수갑놀이를 하고 있는 곳도 거리. 그 술집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거리. 그리고 그 술집 안에는 여자가, 그리고 그 지하에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으아아아아-! 내 차! 술집에 두고 왔다아아아아아! 다아아아아아아아- 젠장! 얼마나 비싼 건데! 천연 가죽시트에 손잡이에 박은 백금에....크윽, 내 애마를 누가 '주인의 동의없이 이사시켜주면' ( 다른말로 훔쳐가면 ) ....... 넌 죽었다, 꼬맹아. 나는 약간 눈썹을 찌푸리고 그를 노려보았다. 잃어버리면 다 네놈 탓이야. 그가 움찔 몸을 떤다. 미치겠군. "춥냐?" 나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면서 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만다.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 "배고파?" 역시 고개를 끄덕하려다가 멈추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얼어죽겠지?" 장난삼아 한번 더 물었다. 그의 입술이 살짝 열린다. "..." "...?" "...." ...침묵의 대화라도 나누자는 건가. 아님, 텔레파시를 보내고 싶은 건가? 우리모두 기왕 손 잡은 김에 순정 드라마나 찍자는 건지, 그가 작게 뭐라고 중얼거렸다. "..." "....뭐라고?" "...." 버리고 갈까? ...그냥 쓰레기통에 던져버릴까, 그래도 인간이니까 재활 쓰레기통에 넣어야 하나, 저런놈이 살아 있으면 사회악이 될게 분명하니 밟아서 잔해를 확인할까.... ......등등 말도 안되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는데, 그가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눈빛으로 분명히 말했다. ...비록 눈은 머리카락에 가려 안 보여도. ' 당신 나 팔아먹으려 그러지? 내가 미쳤지? 당신따라가게? 당신도 미친놈이지? 응? 미쳤지? 미쳤지? ' ...이거 혹시 외계인이 아닐까. 인간이 저런 강력한 포스를 보낸다는것은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너 좀 맞아야 쓰겠다. 내 방 가자." 내 혀가 미쳤지. 내 아리따운 주먹으로 [외계인일지도 모르는] 저 생명체를 두들기고 싶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남자를 내 방으로 왜 데려가! 절대 안돼! "...." 그의 몸이 경련하듯이 떨린다. 으아, 미치겠다. "가자. 여기 추우니까." .....서, 설마 내 혀는 나더러... 저 놈의 몸이 두들겨 맞아 따뜻해질때까지 때리라고 시키고 싶은 건가! ......라는 망상은 하지도 말자. 그가 고개를 푹 숙인채로 따라온다. 미치겠군. 아니, 이미 미친건가. ============== 호텔에서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한 VIP 전용 침실. 외국에서 돈 많으신 정치가나 스타들이 주로 빌리는 곳. 또한 지금 내가 빌린 곳. ....그런 성스럽디 성스러운 방에! 여자가 아닌 남자가, 그것도 이름도 모르고 길거리의 부랑아 같은 그런 녀석이, 그것도 내 눈을 더럽히며 앉아있다. 으음....더럽히는 것은 아닐지도... ....가 아니라! 저녀석의 인간같지 않은 미모에 말려들면 안돼! 내 이름 나 잘 남. 나르시스의 이름으로 말려들면 안되고 말고! ....하지만 저 녀석 정말 이쁘기는 이쁘.... ........긴 뭐가 이뻐! 캬아아 나는 정말 미쳤나 보다. 아니면 저 녀석의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던 그 순간부터 저 녀석에게 빠져버렸거나.... 그는 지금 많이 진정된 채로 서울 시내의 야경을 내려다 보고 있다. "예쁘지?" 내가 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젓지 마! 쫌! 아주 인간성을 시험해 보는구만. "뭐 마실래?" 그가 고개를 옆으로 늘어뜨리며 나를 쳐다본다. 머리카락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는 눈동자가 이번에는 완전히 드러났다. 동그란 밤 하늘빛 눈동자. 아니면... 밤 바다의 빛깔. 그가 고개를 약간 흔든다. "마셔." 왠지 화가 난다. 그가 나의 딱 부러지는 목소리에 움찔하고 놀라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마셔." 내 고운 입술이 다시 말하게 만들지 마라.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고개를 저었다. "가져온다." 나는 쇼파에서 몸을 일으켜 방 한구석에 위치한 와인 진열장으로 향했다. 그의 눈동자가 집요하게 나를 따라온다. 이런 것까지 느끼다니... 왠지 인간 더듬이가 된 느낌인걸. 나는 전생에 개미가 아니었을...젠장,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와인을 잔에 따랐다. 분홍빛의 와인이다. 찰랑거리며 잔에 와 부딪히는 모습은, 분홍빛의 로제 다이아몬드가 부셔지는 느낌이다. 하기야 가격은 왠만한 다이아 정도..이기는 하지. 그가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작게 입술을 웅얼거린다. "..." " 뭐라고?" "..." '...나 술 못 마셔요.' 하아, 정말 나를 미치게 만든다. 너무 예쁘잖아, 저 놈은. =============== 와인 대신에 콜라를 녀석의 손에 쥐어줬다. 그가 미미하게 입술을 움직인다. '고맙습니다' .....였으면 오죽이나 좋겠냐만은... '나 이런거 안 좋아해요.' 까다롭기는. 하지만 왠지 콜라와 그는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의 잔에 주스를 부었다. 이번에는 그의 입술이 살짝 위로 올라간다. 머리카락에 가린 그의 눈도 살짝 웃고 있을것 같다. 목소리를 내어 주면 좋을텐데, 하아. .......라고 생각하다니, 나 쥐약먹었지!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내가 무서운 표정을 지었는지 그가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 손에 들려있던 주스잔은 바닥으로 직행... ....일뻔 했으나, 그의 손이 그것을 받아냈... 아아? ...깨졌다? 그의 손이 거의 다 컵을 따라잡았을때, 컵이 너무 아래로 가 있던 탓인지 바닥에 부딪혀 산산히 깨졌다. 그리고 바닥에 부딪힌후 튀어오르는 유리조각들. 더불어 튀어오르는 주스들과 핏방울. 순간 세상이 슬로우가 된 것 같았다. 그가 입술을 약간 벌렸다. 손가락에 난 상처. 투명한 유리조각, 마치 물방울 같은 유리들이 스치고 지나간 그의 손가락에는 상처가 깊게 패여있었다. 그가 손가락을 움츠린다. 세상은 다시 빠르게 돌아갔다. "너 바보지?" 그의 손목을 쥐었다. 그리고 그를 끌고 서랍으로 향했다. "움직이지 마라. 상처 벌어지니까." 그는 아까 내 표정때문인지 잔뜩 쫄아있는 채로 나를 따라왔다. 밴드가 여기 어디에 있을 텐데. "가만히 있어." 서랍속을 더듬어 간신히 찾아낸 밴드를 붙여주면서, 나는 그에게 그렇게 일렀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아 씨... 젓지 마! 이런 거에도 젓냐! 내 말을 안 듣겠다는 반항의 표시야, 뭐야? 그가 고개를 기울이면서 나를 쳐다봤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너 집 있냐?" 그가 고개를 저으려다 말고...끄덕인다. 그리고 입술을 약간 연다. '없어요' 그럼 고개는 왜 끄덕여? 그의 패턴이 대충 보이는 것 같다. 처음의 제스쳐가 무조건 진짜라는 거지. "씻고 싶어?" 나는 그의 손등에 밴드를 붙이면서 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흠칫 놀라더니, 도리도리 젓는다. 씻고 싶다...라.... 손이 덧날텐데. 하기야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어? ====================== ....라고 생각했으나, 실은 상관이 있었다. 빌어먹을. 그의 옷에 묻어있는 주스와 피를 본 순간 나의 청결본능이 발휘되어.. (절대로 그런 것이다! 절대로! 나는 절대로 그의 애처로운 눈동자에 넘어간 것이 아니다! 이미 당한 수법에 또 당할 리가 없지! 암, 암........ ....아마도....) 그를 욕실로 인도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상처입은 손을 방수 천 안에 넣은 채로 목욕하고 있다. ...그것도 나의 특별 서비스를 받아가면서 말이지. 하아, 천하의 나르시스가 이름모를 한 소년의 등을 문질러줄 생각을 하다니. 미쳤구나.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의 이름은 뭐지. "너의 이름은?" 물이 튀겨 추욱 늘어진 머리카락을 손등으로 쓸어올리면서 물었다. 그가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다시 돌린다. "좋아." 말하지 마. 말하고 싶을때 말해라. 어자피 나랑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앤데. ........라고 해서, 지금 내가 등을 문질러 주고 있겠냐?! 아아...빌어먹을. 그는 욕실에 달려있는 큰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서울의 야경. 환한 불빛의 도시. "자, 팔 내밀어." 그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서....팔을 내밀었으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슬프게도 그는 미동조차 안 한다. 할 수 없지. 자급자족...이라는 단어를 흥얼거리며 나는 거품속에 파묻힌, 상쳐나지 않은 다른 손을 찾아 물밖으로 끌어냈다. 하얀 팔을 타월로 문질렀다. 정말, 하얀 눈꽃처럼 하얗다. 어깨에서부터 서서히 팔꿈치까지, 그리고 다시 손목까지 타월이 미끄러진다. 그때, 문득 그의 손목에 착 감긴 푸른 나비가 눈에 들어왔다. 나비가 아니다. 팔찌마냥 그의 손목을 죄고 있는 저 것은 절대로 나비가 아니다. 푸른 멍.. 아까 녀석을 잡고서 달릴때 너무 힘을 줬던 걸까. 내가 가만히 있는게 의아했는지, 그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내가 손목을 빤히 들여다 보고 있는걸 알아차리고는, 내 손을 쳐내고 거품속으로 다시 손을 숨겼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버린다. 하늘색의 머리카락이 그의 등에 착 달라붙어 있다. 그리고 낙인처럼 손목을 휘감은 보랏빛 멍자국. 그가 고개를 푹 숙인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생소한 감정, 미안함이 천천히 떠올랐다. --------------------------------------------------- ================== 나르시스의 시점 ========================== 정말 희한한 녀석 정말로 이상한 녀석. 뇌가 약간 모자란 모양인지 무슨 말을 해도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지 않는 녀석.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예쁜 동그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녀석. "이제 물기 닦자." 나는 욕조 안에 손을 집어넣어 그를 들어올렸다. 생각보다...더 가볍다. 그를 잠시 욕조 가장자리에 앉힌 후 샤워가운을 그의 어깨에 걸쳤다. 그가 스스로 가운의 벨트를 묶는다. 이제는 정상적인 옷을 입혀야 겠군. 그를 달랑 들어올렸다. 그가 내 어깨에 물기젖은 머리를 기댄다. 그리고서 하늘색 머리카락에 반쯤 가린 눈동자로 내 얼굴을 올려다 본다. 하아아아.. 나를 유혹하려는 거냐. 그의 입술이 아까보다 더 붉게 느껴졌다. 욕실에서 나와 그 옆에 붙어있는 드레스 룸의 문을 밀었다. 불이 켜져 있지 않아 어두운 방. 그가 몸을 움츠리며 내 목을 강하게 끌어안는다. 어둠에 놀란 걸까. 방금전에 물에서 나와 차가운 피부가 내 목덜미를 덮는다. 아까까지의 감정없는 태도대신에 선정적으로까지 느껴지는 몸짓. 단순히 내 목을 손으로 감았을 뿐인데도 왜 이렇게 느껴지는 것인지. 그 말은... ...........내가 짐승이란 소리냐! 으아아아- 나는 평범한 노말이야! 절대로 게이라거나 바이가 아니라고! 이 놈은 남자야! 남자란 말이다-! 정신차려, 나르시스! 그가 동그란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 본다. 크윽... 그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지 마! 문득 바나나맛 우유의, '그런 슬픈눈으로-' 라는 노래가 떠오른 것은 왜인지. 팔꿈치로 스위치를 눌렀다. 옅은 빛의 나무로 만들어진 옷장들이 보인다. 그가 내 목에서 팔을 내렸다. 그런데 왜 그게 아쉽게 느껴지.... 지 않아! 절대로 그렇게 느끼면 안돼! 너는 게이가 아니란 말이다, 나르시스! 그를 의자 위에 앉혔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샤워가운을 반쯤 벗겨내고 옷장을 열어 내가 잠옷으로 입는 티셔츠를 하나 꺼내 푹 덮어씌웠다. 그는 반쯤 티를 걸친채 그대로 앉아 있다. 그리고 여전히 동그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본다. 이, 입혀 달라는 거니? 그가 입을 살짝 연다. 그리고 소리 없이 말한다. '입혀줘' ...네가 여왕님이니? 하아, 내 방에 거물을 들인것 같군. 그리고 그로부터 한달 뒤. 계절은 겨울로 완전히 들어섰다. 집이 없다는 이 녀석은 내 방에서 호의호식하며, 내 시중을 받으며 잘 살고 있다. 물론 한마디도 안 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내가 퇴근해서 들어오면 TV 를 보다마다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는 것도 여전하다. 미소도 짓지 않은채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나는 그를 위해 사온 간식거리를 항상 그의 앞에 놓아준다. 아아아...천하의 나르시스가 이름도 모르는 한 꼬맹이의 시종으로 전락하다니. 하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베스킨의 민트쵸코칩 아이스크림을 놓아주면, 그의 눈에 기쁜듯한 표정이 어리니까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다. 저것도 의외로 마약이로군. 아침마다 내 옆에서 잠든 그를 한번 쳐다보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침대 옆 탁자에 아침을 만들어 놓아주고, 호텔 식당에 연락해 점심은 항상 시켜주고. 그리고 출근하고. 퇴근할때는 도넛이나 아이스크림, 빵을 사가지고 들어가고. 한달 간 여자에게 연락하지도 않았다. 아니, 한번 전화는 왔었다. 날카로운 하이소프라노와 함께. ' 왜 그랬어? 지금 내가 얼마나 곤란한지 알아? ' '....' '왜 그 남자애를 데리고 사라진 거냐구!'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었다. 그가 아이스크림을 먹다 말고서 나를 쳐다본다. 내가 가만히 있는게 이상했던 건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를 보지도 않고 내 손을 건드린다. 그리고. ....내 손에 스푼은 왜 쥐어 주는 거냐! 그가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돌린다. "..먹, 먹으라고?" 그가 고개를 젓는다. "먹지 말라고?"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그럼 뭘 어쩌라는 거냐. 그가 고개를 휙 돌리면서 입술을 살짝 벌렸다. '씻어줄래요?' 아아아아아아- 이 놈 의외로 여왕님이었어어어어어어어어- -------------------------------------------------- 텔레비전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제길, 무서운 놈. 그가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돌린다. 브라운관 속에서는 놀이공원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는 놀이기구. 돈만 내면 누구나 입장할 수 있는, 상업주의의 천국. 그가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 그 다음 날 / 아침에 암체어에 앉아 유유자적하게 신문을 읽고 있는데, 그가 졸린 눈을 비비며 방에서 걸어나왔다. 왠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났데? 아직 아침 8 신데. 내가 일을 나가는 시간이 아침 9 시. ...그리고 내가 이제까지 지켜본 봐로는 녀석의 기상시간은 정확하게 11 시. 너무나 아침잠이 많아서 점심때 거의 다 되어 일어난 후 아침을 먹고 한 시간 뒤에 점심을 먹는 녀석이었다.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어쨌거나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데? 해가 서쪽...이 아니라 아예 안 뜨기라도 한 걸까? 창문 밖을 흘낏 내다보다가 왠지 쪽팔려서 다시 고개를 신문으로 돌렸다. 그가 내 앞의 의자에 털썩 앉는다. 여기저기 뻗친 머리카락, 오늘도 침대 위를 종횡무진으로 쓸고 다녔는지 꾸깃꾸깃해진 잠옷. 잠이 덜 깨서인지 멍한 눈동자. 으음...저 잠옷을 또 다려줄 생각을 하니, 팔이 절로 아파오는 구만. 천하의 나르시스가 한낱 꼬맹이의 잠옷을 다리미로 빳빳하게 메일같이 다려주....는게 중요한게 아니고! 나 자꾸 왜 이러지. “커피 마실래?” 내 커핏잔을 그의 앞으로 밀었다. 그가 고개를 젓는다. 예전 보다 의사 표현이 확실하게 되는 그다. 그때는 솔찍히 ....너무 지겨웠어! 수수께끼도 아니고, 애매하기 그지없는 행동들. 의미를 알아내기 힘든 제스쳐. 바디 랭귀지가 만국 공통 언어라 한 사람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의 답답함. 하여튼 지금은 의사표현이 조금 더 확실해진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리모컨의 버튼을 누른다. TV 의 검은 화면이 원색으로 물들었다. 아침 뉴스. 아나운서의 빠른 말투를 귓등으로 흘리고 있는 그의 어깨를 건드렸다. “뭔 생각 해?” 뉴스라면 환장하는 녀석이 멍하니 있으니까 무섭잖아. 새벽뉴스부터 밤 11시 뉴스까지, 혹은 스카이까지 뒤지는 녀석이. 그가 고개를 돌린다. 네가 뭔 상관이야! 라고 하는 오오라를 물씬물씬 풍기는데....제길. 아침부터 암울한 기분이다. ‘나도 너 상관 안해!’ 라는 약간은 유치한 마음으로 신문을 읽어나가는데,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내 손에 차가운 뭔가가 닿았다. 뭐냐! ....가 아니라. 그가 내 손등을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고 있었다. 그가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톡톡 가벼운 손가락 동작으로. 진지하게 내 손등을 쳐다보는 모습이 마치 새끼 고양이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손톱으로 내 피부를 살짝 눌렀다가, 짜증내듯이 빠르게 손등을 두드렸다. 마치 대답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짜증내는 것 처럼. 대답할까? 아니다. 조금만 더. 열심히 내 손등을 두드리는 모습이 귀여우니까, 조금만 더 놔두자. 나는 신문의 기사로 정신을 집중했다. 그래, 무시하는 것 처럼 보이는게 아니라, 못 들은 것 처럼. 내가 결정을 내린 것과 동시에, 그의 손톱이 내 손등을 깊게 찔렀다. "윽.." 입에서 순간 신음이 새어나왔다. 내가 고개를 들자, 그의 동그란 눈동자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덧붙여, 약간 화난듯이 눈썹을 찌푸리며. 으음...정말 귀엽단 말이야. 손을 뻗어서 그의 부드러운 - 또한 삐죽삐죽 뻗친 -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왜?" 그가 텔레비전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 / 놀이공원 / 서울의 복잡한 한복판, 그 중심에 위치한 놀이공원. 이 곳은 정확히, 놀이공원을 들어가기 위한 입구. 외국인 끼가 팍팍 나는 내 얼굴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정말 부담스러운 이 곳. 그리고... " 꺄아아아- 저기 저 사람 외국인-" " 얼마전에 카르페디엠에 나온 모델이잖아!" "그런데 그 옆은..." "와아-" ..... 내 옆에 엉겨붙어 동그란 눈동자로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 이 녀석에게 향한 시선이, 정말 짜증나는 이 곳. 내가 처음 그를 봤을때 입었던 하얀 니트티가 사람들 속에서 유난히 빛을 발한다. 하기야, 지금 다른 사람들은 다 회색 검은색 등 암울한 색의 옷들로 몸을 감싸고 있지만 이 녀석은.. "뭐 먹고 싶어?" 잔뜩 기대하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는 녀석이 웃겨서, 또 웃고 싶은 마음이 든게 미안해서 상냥하게 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뭐 먹고 싶은데?" 그가 고개를 약간 갸우뚱 했다. 그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 하기야 이 녀석은 한번도 웃은 적이 없지 - 나를 다시 쳐다본다. "안에 들어가서 먹을거야?" 끄덕. 배가 별로 안 고픈가. ....나는 배 고픈데. 주말이 되자마자, 그 많던 아침잠이 사라진 녀석의 깨움을 받아야 했다. ...새벽 5 시에. 하기야, 이 녀석은 아직 애니까. "그럼, 지금 들어갈래 아니면 조금 이따 갈래?"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질문에서는 답이 되기 어렵잖아. 다시 한번 물었다. "지금 들어갈래?"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너 좋을대로 해라. 인간들에 끼일까 걱정이 되어 그를 달랑 안아들고 줄에 서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이 녀석은 정말 여왕님이고, 나는 이 녀석을 지키는 기사...가 아니라 돌보는 머슴이 된 것 같다. ...왠지 기분 나쁘군, 그냥 하인이라고 하자. / 안에서 / 그는 지금 내가 사서 건내준 소프트 아이스크림 -초코맛 - 을 핥으며 즐거워 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추측일 뿐. 무표정한 얼굴은 그대로니까. 그의 손을 잡으려는 내 손을, 그가 쳐 냈다. "왜...?" 그가 동그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작게. '더워.' 약간 늘어진 갈색 진과 하얀 니트가 눈에 조금 거슬렸다. 올이 조금 풀리기까지. 들어오기 전에 새옷 한벌 사 줄걸. .......이라는 현실 도피! 아윽, 제길. 이런 여왕님을 내 집 - 이 아니라 내 방 - 에 들여놓은게 잘못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탓 이기에 한탄도 못 하겠군. 애초에 저 빌어먹을 남청색 눈동자에 반하지 않았으면 그만 아닌가! 제길! 얼굴에 맞게 어린애 다운 미각과 어린애 다운 취향을 가진 그가 고개를 돌렸다. ---------------------------------------- 그가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너!" 날카로운 목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그리고 두두두두 달려오는 .....먼지와 사람. 남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그는 내 몸을 사뿐히 즈려밟고 녀석 앞에 섰다. 그리고 녀석의 손을 꼬옥 잡는다. "너! 이런식으로 살면 안돼, 저런 놈이 어딜 좋다고! 내가 더 낫잖아! 안 그래?" 녀석의 손에서 아이스크림이 떨어진다. 워낙 컸지만 더 커진 눈동자. 놈이 나를 내려다본다. ...아주 재수없게. 내 아리따운 정장에 났을게 분명한 자신의 발자국을 만족스럽게 내려다 보더니, 픽 하고 비웃는다. 빌어먹을 놈. 하지만 쪽팔려서 그냥 바닥에 계속 엎드려 있.... ..으려고 하다가, 문득 사람들의 신발로인해 더러운 아스팔트가 연상되었다. 그래서 파딱 일어서자 그 이상한 놈이 말했다. "저런 광대가 뭐가 좋다구, 응?" 녀석, 녀석의 눈이 떨린다. 그리고 그 이상한 놈에서 손을 빼려 한다. ...왠지...화가 난다. "놔라." 놈의 손을 쳐냈다. 나도 함부로 못 잡는 녀석의 손을 잡은 놈의 모습과, 더불어 더러워진 내 비싸디 비싼 수트의 모습이 떠올라 더 화가 났다. 빌어먹을 새끼. 퍼억- 얼굴이 확 돌아갔다. "크윽..." 눈앞이 아찔했다. 불꽃이 터지는 것 같다. 놈이 그 남색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하지만 약간 무시하는듯한 목소리. "네 할일이나 해." 순간...내 뒤에서 무시무시한 오오라가 솟아올랐다. 커어어어- 살기가 뭉실뭉실 내 목을 조여온다. 그리고 그 검은 오오라에서 두 팔이 불쑥 뻗어나가 저 빌어먹을 놈의 목을 조이는 것이... ....내 눈의 착각은 아니겠지? 놈의 얼굴이 하얘진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한발 두발 물러서는 것이 보였다. 내 뒤에 누...구...있나요? 공포로 인해 뻣뻣해지다 못해 딱딱해진 목을 간신히 돌려 내 등 뒤를 쳐다봤다. 그때, 살기넘치던 오오라가 사라졌다. "....." 커다란 눈망울이 촉촉히 젖은 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귀여운 녀석. 내 뒤에는 하늘색 머리를 한 그가 서 있었다. 그럼 아까 그 살기넘치다 못해 암울한 기운이 꾸물꾸물 거리던 그 오오라는? 그 오오라는 누구의 작품이야? 남색 머리를 한 그 청년이 끼어들었다. "아, 저는 이만." 그리고 바람 한 줄기. ....엑스트라의 퇴장은 항상 이렇다.....가 아니라! 녀석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가요' 라고 하듯 입이 약간 벌어졌다. 설마, 아까 그 오오라는 이 녀석의 명작? ...만약 그렇더라도 지금은 생각하지 말아야지. 약간 창백하지만 모양좋은 저 입술이 내 머릿속을 가득 메웠으니까. / 약간 뒤 / 눈이 내린다. 하늘에서 펑펑. 숨막힐듯이 하얀 그런 눈이 내린다. 그가 내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추워?" 고개를 젓는다. 이러시면 아니되와요! 똑같은 남자끼리 남사스럽게 이게 무슨...좋은짓이냐. ...라고 생각하다가 순간 좌절해 버렸다. 천하의 나르시스, 저런 녀석을 만나서 많이 썩었구나. "춥지?" 도리질을 친다. 역시 옷을 사 줬어야 했어. 평소 집 안에서 입는 그 옷을 입고 나올수도 없었고, ( 다 내 옷인지라 너무 커서 )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녀석을 처음 만났을때 입고 있던 , 또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너무 얇아. 녀석이 고개를 돌렸다. 녀석의 손에 꼭 쥐고 있는 풍선이 왠지 귀엽다. 반짝반짝 거리는 외면에 녀석의 얼굴이 비쳤다. 아윽- 너무 귀엽다구. 솔찍히 저 풍선보다는 녀석이. 그가 입술을 살짝 내민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 한다. ....또 뭔 지랄이냐는 것이겠지. 크으윽....그렇다. 나는 지금 기둥을 팔로 안고서 비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르시스, 나르시스. 최고의 톱 모델. 한 소년때문에 너의 자아도취가 막을 내리는 구나. 아윽, 제길. 저 녀석 너무 이쁘다고! 가슴팍에서 뭔가 꼬물거리는 느낌에 가슴쪽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쌍코피. 젠장! 너 일부로 그러는 거지. 얇은 니트가 전부여서 추웠던지, 외투를 입은 내 품속으로 꼬물꼬물 파고든 녀석. 최고다! 깔고싶다! 아니야, 나르시스. 진정해. 저 녀석보다 네가 100 배 1000 배는 멋지다고! 저 녀석보다! 으으으으으으으읏! 무엇보다 저 녀석은 남자야! 그가 고개를 약간 들어서 나를 올려다 본다. 하얀 피부가 정말 곱다. 주근깨 하나 점 하나 없단 말이지. 썩을, 내가 밀리는군. 찬 바람이 불어서 그의 머리카락을 약간 흔들었다. 하늘색 실 타래가 살짝 움직이면서, 그 안쪽에 가려져 있던 눈동자가 드러난다. 아아아♥ 이 놈은 정말 최고야♥ 목소리가 어떨지 정말 궁금한데. 설마 깔리면서도 신음 한번 안 낼까. ........가 아니야! 나르시스! 나 잘남씨! 이 놈은 남자야! 달릴거 다 달린 남자라고오오오! 그가 내 몸을 세게 밀었다. "읏...왜?" 녀석의 손이 내 유두를 자극해서 나의 분신이 꼿꼿히 일어섰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빌어먹을! 그가 풍선을 잡은 손을 풀었다. 풍선이 천천히 하늘로 솟아오른다. "왜...?" 내가 그 풍선을 잡으려고 손을 뻗은 순간, 그가 내 소매를 잡는다. 그리고 약간 고개를 돌린다. 어째서? 그가 손을 놓고는, 천천히 걷는다. 성으로 향한다. 성 앞 다리에 거의 다다랐을 때, 그가 뛴다. 주위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순간 구름낀 하늘이 천천히 열린다. 그가 멈춰선다. 가녀리고 가는 몸에 헐렁한 스웨터를 걸친 모습이 아름다웠다. 성 앞의 다리 중간에서, 그는 그렇게 서 있었다. 그가 두 팔을 벌린다. 가는 실로 짜여진 하얗고 얇은 모직물 안으로 가는 허리가 눈부시게 드러난다. 순간, 시간이 거의 멈추었다. 하늘색으로 물들인 머리카락이 하늘의 숨결로 너울거린다. 구름이 벌어지며 드러난 하늘과 맑고 투명한 햇살. 그의 머리카락이 너울너울 투명하게 춤을 췄다. 투명한 유리조각들... 그가 웃었다. 부드럽게 미소했다. 그는 처음으로 웃고있었다. 나에게, 처음으로. 눈물나도록 기쁘다. 머리카락에 어린 황금빛 햇살이 물결처럼 일렁였다. 밝고 하얗다. 그가 두 팔을 벌린채 춤추듯이 뛰어오르며 그 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았다. 비둘기들이 떼를 지어 푸드득 날아올랐다. 하얀 나래들이 그의 몸을 감싼다. 그의 등에 하얀 날개가 돋은 것 같다. 경이로움. 시간은 너무나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벚꽃, 벚꽃으로 화한 눈꽃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그의 머리 위에, 하얀 니트 위에, 이 다리 위에, 그리고 나에게. 그의 머리카락에 햇살이 쏟아진다. 눈이 오는데도 불구하고 스포라이트 처럼 쏟아지는 햇빛이 이질적이었다. 그가 내 쪽으로 한쪽 발을 떼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간이 원래대로 되돌아오며, 그의 몸이 내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 차 안에서 / 그는 피곤한지 내 무릎을 베고 자고 있었다. 놀이기구를 탄 뒤에 쇼핑까지 한 터라 고단하기도 하겠지. 나야 뭐 모델 생활로 길들여진 몸이니까 이 정도는 거뜬- - 이라기 보다는, 모델을 위해 갈고 닦은 몸이 받쳐준달까. 사실 정신적으로는 상당히 힘들다. 그의 머리카락이 내 무릎위에 흩어졌다. 남청색 눈동자가 생각났다. 밤 하늘빛 눈동자. 하지만 서울의 밤 하늘은 붉다. 구름에 서울의 불빛이 반사되어서 그런 것이리라... .....으음...과학 공부좀 열심히 해 둘걸. 전화 안에서 매니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그래서요, 나 잘남씨? 왜 전하하신 거래요? 한창 좋았는데. ] "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랬지. 어쨌거나 이번에는 부탁할 게 있어서 전화한 거야." [ 네, 모델님. 뭔 일인데요? ] " 집을 하나 마련해 줬으면 해." [집?] "그래. 서울의 어디에 위치해도 상관 없어. 하지만 좀 좋은 걸로." [ 이제야 드디어 할 마음이 난 거예요? 그 동안은 떠날 사람처럼 굴었잖아요? ] "떠날 사람은 맞지. 2 월이면 철수 할테니까." [ 어쨌거나 몇 평으로?] "둘이서...둘이서 생활하기에 딱 알맞은 크기로." 택시 운전사가 웃는다. "어디에 여자친구 두셨나 봐요? 아니면 무릎 위의 그 분인가?" 순간 차 안에 가득차 있는 쇼핑백이 바스락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내 마음도, 덜컹 내려앉았다. 여자친구...여자친구. 여자는 아니지만 사귀고 싶은 아이. 비록 남자지만... 어쩌면 내가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녀석이 옹알이 하듯이 입술을 살짝 움직였다. 하늘색 머리카락이 눈 안에 선명하다. ----------------------------------------------------- ============== 나르시스의 시점 ========================= 추운듯 몸을 웅크리고 자고 있는 그를 내 옷으로 둘둘 말아, 어깨에 짊어졌다. 대체 뭘 먹고 자랐길래 이렇게 가벼운 거야. 뼈 밖에 없잖아. 옆에서 택시 운전사가 쇼핑백들을 두손 가득 안고서 나를 따라온다. 역시 너무 많이 샀나. 하지만 녀석은 옷이 한벌밖에 없는걸. "여자친구냐?" 아저씨가 빙글거린다. 별걸 다 참견하셔. 아저씨에게 '참견하지 마요' 라는 눈길을 던져 준 후,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윽, 별꼴이야. 호텔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고급스런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 명품으로 휘감은 로비. 공기마저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그런 곳. 서울의 최고급 호텔. 부자티 팍팍 나는, 멋진 황금빛 엘레베이터 문이 열렸다. "어디까지 갑니까?" 벨보이가 경계심 어린 눈동자로 택시운전사를 쳐다본다. "상관할 것 없어." 우물쭈물 하는 아저씨 [ 라기보다, 사실 할아버지 ] 를 대신해서 내가 말을 잘랐다. 보이가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시선을 내 어께에 메달려 있는 녀석에게로 옮겼다. 우연인지 고의인지, 때맞춰 녀석이 입술을 꼬물거린다. 키스해 달라고 애원하는 거냐! 보이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녀석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어딜 감히! 내 것에서 눈 치워! 괜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꾸 그렇게 쳐다보면... 눈깔을 파내주마." 나도 모르게 잇새로 그런 말이 흘러나오자, 보이와 할아버지 [ 아저씨에서 바뀌었다 ] 가 흠칫 하는 모습이 보였다. 더 화나는군. 당황해서 고개를 숙이는 보이를 지나 엘레베이터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할아버지도 황급히 내 뒤를 따랐다. 나는 당연하다는듯이, 그에게 명령했다. "문 닫어, boy." 문이 스스르 닫힌다. / 2 주일 뒤 / 독점욕, 그래. 그것을 독점욕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사실 그것은 내가 그를 독점하고 싶어하는 욕망이었으니까. 그가 웃는다. 요즘들어서 그는 자주 웃는다. "왜 웃어?"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의 이마를 튕겼다. 하지만 그는 그저 생긋 웃을 뿐. 호텔에서 이 집으로 이사한지 일 주일이 흘렀다. 하얀 오피스텔 건물. 타워펠리스가 보이는 곳이다. 빌어먹게도 상류층의 사람들이 사는 그런 곳을 주위에 둔 그런 곳에서, 나는 살고 있다. 내 시중을 받으며 호의호식하는 이 녀석과 함께. "왜 웃냐고." 손가락으로 이번에는 그의 이마를 밀었다. 그가 안 밀리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뒤로 머리를 팍 제낀다. 운동으로 단련된 내 손가락을 이길수 없다는걸 진작에 알아야지. 더욱이 그런 불편한 자세로는. 두 사람이 살면 딱 좋을 크기의 그런 오피스텔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신혼부부티가 나는 아기자기한 이런 집에서. .....대체 이 인테리어 누가 한거야, 엉?! ....이라고 해 봐야 소용없다. 아마도 전 주인이겠지. 전 주인의 이름이 ...이름이.... 한... 뭐더라? 아아, 모른다. 나처럼 잘난 사람은 남자들 이름 안 외워도 괜찮아. 상관없어. 여자 이름 외우기도 바쁜데 하물며 남자 이름이... 라는 생각을 하다가 내 스스로 머리를 식탁에 박아버렸다. 나 바본가봐. 요즘 나 여자 안 만나고 있으면서. 화인이도 정선이도 윤수도, 지희도. 아무도 안 만나고 있으면서 이런 발칙한 생각이나 하다니! 난 너만 있으면 돼. 크윽... 잠시 여자생각을 한 나를 용서해 주렴. 나는 고개를 들어 내 앞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항의하듯이 그가 내 가슴을 민다. 아읏, 귀여워. 그리고는 소리도 없으면서 입술로 빠르게 소리친다. '.....!' 그래봐야 안 들려. 아암, 안 들리고 말고. 나는 그를 더 당겨 안으며 그의 가슴에 내 손을 얹...! 그가 새빨개진 얼굴로 나를 노려본다. "....." "...." 아윽... "이, 이건 말이지..." 때마침 그의 옷이 말려올라가면서 새하얀 배를 드러냈다. 내가 미쳐! 그의 얼굴이 점점 더 빨개진다. 이젠 완전히 토마토. "너 얼굴 왜 그렇게 빨개졌냐? 혹시 너 느껴....." 강렬한 펀치. 새 집에 온지 일주일 되는 날. 잡생각을 하다가 녀석에게 맞다. .....펀치는 제법 강렬하군... '...그런데 진짜 느낀거 아니야? ' / 주차장에서 / 녀석에게 맞아서 부운 얼굴을 한 채로, 나는 부룽퉁한 녀석을 안고 차에 올랐다. 아으, 비싸고 귀여운 내 차, 오랜만이구나. 사랑해♥ 약간 삐진 얼굴을 한 녀석을 달래면서, 나는 차에 키스했다. 녀석이 내 등을 세게 때린다. 그리고 차가운 얼굴로 한번 쏘아보더니, 총총히 사라진다. ....대체 왜? "왜?" 팔짱을 끼고서 앞 자리에 털석 앉는다. 어이고, 삐졌구만. 그가 ' 나보다 차가 더 좋아? 정말? 조금전까지 내 가슴을 만져놓고서? 맨날 잘때 나를 끌어안는게 누구였더라? 정말? 내가 싫어? 차가 더 좋아? 엉? 만날 내 허리 만져대는게 누구였더라? 응? 이 변태? 이젠 무생물에게 난리야? 응?' 하는 포스를 내게 보냈다. 무서운 놈. "...그런데 저기." 네가 앉은 곳은 운전석이거든. 왜 거기에 앉아? 혹시.... 그가 사나운 눈으로 나를 노려본뒤 조수석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앉, 앉으라고?"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화났군. "너 미성년자잖아." 아냐! 라고 발악하듯이 그의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빌어먹을, "나 죽기 싫은데. 운전면허는 있어?" 그가 잠깐 멈칫 하더니만 천장으로 시선을 돌린다. 혹시 없는 것은? 불안감이 새록새록 커져만 가는데 그가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다시 전해오는 포스. ' 정말 내가 싫으신 거예요? 응? 미안해요..나 안 그럴게요...' 커억- 내가 이런데 약한줄 어떻게 안 거냐. 내 의지를 배반한 [ 어쩌면 이성을 배반한 ] 내 몸은 망설임 없이 안전벨트 사이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닫는다. 이, 이러면 아니돼. "......" 간다! 라고 말하듯이 그가 나를 쳐다본다. 크윽. "...죽이지만 말아주세요." 입에서 한숨이 터져나왔다. / 칵테일 바에서 / 노랫소리. 우아한 여자들, 그리고 남자들. 예전에 왔었던 BLUE SEA. 그가 노래를 부르던 곳. 그런 그곳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 곳에, 너무 빠른 시간에 휩쓸려 버린 모습의 내가 있었다. 그리고 동화속 인어공주 같은 그가. 그가 약간 불안해 하면서도 웃는다. "불안해?" 도리질을 친다. 하기야... 불안하겠냐. 차에 올라타자마자 일반 도로에서 광란의 질주를 하던 이녀석이! 세상에, 그런 미친놈은 처음 봤다. 타자마자 몸이 뒤로 젖혀지는 느낌과 함께 차가 출발했고, 그리고 엄청난 가속을 시작했다. 그리고 막 속도계가 150 을 가리킨 그 순간. 끼이이이이익- 신호등. 그리고.....[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비명소리. 오싹오싹한 경험이었다. 이녀석한테는 차를 맡기면 안 되겠군. 회상하니 또 흐르는 식은땀을 남 모르게 훔치면서, 나는 그에게 웃어보였다. "마실래?" 고개를 끄덕인다. 저런 순진무구한 모습을 믿으면 안 돼. 저 속에는 무려...무려....이무기가 있단 말이다! 그가 손가락으로 칵테일을 가리킨다. "마시고 싶어?" 끄덕. 하늘색 머리카락과 가장 잘 어울리는 칵테일.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때 나는 이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지. ----------------------------------------------------------- ============== 나르시스의 시점 ================== 그가 고개를 숙인다. 하얀 목덜미가 드러난다. 키스해 보고 싶다... ....가 아니지! 나 바보야, 나 정말 바보야! 으아, 나 미쳤나봐! 그가 재밌다는 듯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눈 깔어. 안 깔어? ...라고 외치고픈 마음은 간절하건만 저 애절한 눈동자를 보면... 하아, 난 정말 이 녀석에게 약하다구. "나왔습니다." 하얀 머리카락의 웨이터가 잔을 내민다. 그리고 그 옆에 작게 자른 과일들과 후르츠칵테일이 담긴 작은 접시가 나온다. 나는 잔을 들었다. 하얀 머리칼의 웨이터가 눈웃음친다. "먹기 아깝지 않습니까?" 별로. 약간 묘한 기분이 되어 일부로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잔을 들었다. 푸르디 푸른 액체가 출렁인다. 블루하와이. 푸른빛의 칵테일. 대체 어떻게 해야 이런 색이 나오는 거지. 투명한 잔과 역시 투명한 칵테일에 그의 모습이 비친다. 그의 하늘색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살짝살짝 누르면서 자신의 앞에 놓인 칵테일을 관찰하고 있었다. 하아, 예쁘구만. 칵테일은 우선 제껴두고 저 입술, 핏기없는 저 입술을 관찰하자. 모양은 좋다. 두껍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느다랗지도 않다. 적당한 두께, 그리고 적당한 크기. 그리고 그 빛깔은... .......그, 그만, 그만, 그만해! 나는 변태가 아니야! 내 발악을 아는지 모르는지 ( 물론 당연히 모르겠지만 ) 그가 살풋이 웃으며 칵테일을 조금 마셨다. 손으로 야자수장식을 살짝 밀쳐내며. 조개껍질과 파인애플과 체리 그리고 이상한 과일 몇 개로 만들어진 알록달록한 야자수. 그의 하얀 얼굴이 금새 달아올랐다. 저거 의외로 도수 높은데.. 그리 술에 강해보이지도 않는 그가 괜찮을까. 하기야 외모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지만. 그가 홀짝거리며 한 모금을 더 마신다. 술에 입술이 젖어 반짝거린다. 하늘색의 엷고 가느다란 조명 밑에서 보는 그는 놀랍도록 다른 사람 같다. 조금전까지 미친듯 차를 몰던 녀석이라고 누가 생각하겠어? 웨이터가 술병을 닦으면서 킥 웃는다. 닥쳐! 연인들의 행복한 시간을 방해하지 마! 지금 하고 있는 그대로 술병이나 계속 닦으라고! ....잠깐. 내가 뭐라고 그랬지? 여, 연인들? .....나르시스, 나르시스. 드디어 네가 호모가 되었구나. I'm not a homosexual! .....the son of the bich. 으아아아아아-! 나르시스, 제발 please! 젠장할. 녀석이 입술을 약간 움직이면서 나를 쳐다본다. "뭘 봐." 괜히 아니꼬운 기분이 들어서 그렇게 쏘아붙였다. 그가 약간 움찔 하다가 작게 미소짓는다. 마치. ' 왜 그렇게 화 내요?' 라고 말하는 듯한. 내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그가 눈썹을 살짝 모은다. 그리고 내 칵테일을 유심히 쳐다본다. 뭐라도 발견하려는 양. 그가 약간 눈을 크게 뜬다. 그리곤 자신의 칵테일과 비교하듯이 쳐다본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천천히 웨이터의 모습을 관찰하더니, 내 칵테일을 끌어당긴다. ( 이때 웨이터는 다른 손님의 칵테일에 우산을 꽂고 있었다 ) 웨이터가 약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마실려고?" 고개를 젓는다. "왜 가져가?" 나는 아까전의 불순한 생각을 싹싹 지우면서 물었다. 그가 고개를 젓는다. "뭔데." 도리질. "그럼 왜 가져가?" 그가 고개를 숙이면서 계속 머리를 젓는다. 슬슬 화가 난다. 짜증스러움. 너무 답답해. 목소리가 없는 게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해. 나는 내 칵테일을 당겼다. "줘." 그가 고개를 저으면서 자신쪽으로 끌어 당겼다. "달라니까." 네 것도 저기에 남아 있잖아! 돌려 달라고. 그가 약간 더 세게 당긴다. "달라니까." 어조에 조금 더 강조를 하며 나는 그의 손을 손가락부터 하나하나 떼어내기 시작했다. 그가 고개를 더 세게 젓는다. "달라고!" 그와 더불어서 내가 당기는 힘도 더 세졌다. 그가 고개를 세게 내젓는다. 하늘색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의 손가락이 잔을 다시 세게 움켜쥔다. "대체 왜!" 내 목소리가 주점 안의 공기를 날카로운 칼날처럼 난도질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잔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채앵- 섬뜩하다. 그 날카로운 유리의 울림에 정신이 퍼뜩 깨어났다. 사람들이 내 쪽을 쳐다보고 있다. 투명한 유리잔의 외침.. 웨이터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를 쳐다보더니, 다시 애매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내 몸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흡사...한 마리의 늑대처럼. 웨이터가 손을 내민다. "가자." 그것은 이 녀석에게 하는 말인가? 녀석이 그의 손을 잡는다. 살짝 떨면서도, 그의 손을 놓지 않는다. 녀석이 나를 쳐다본다. 약간 일그러진 그의 입꼬리가 보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디 가려고?" 약간 성질이 나서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가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 본다. "..." 그가 손을 빼내려 어깨를 약간 틀었다. 약간 더 화가 났다. "어디 갈건데." 손목을 조금 더 세게 쥐자 그가 흠칫 놀란다. 그 모습이 짜증스러워 그의 손목을 확 비틀었다. "..!" 그가 입을 벌리고 소리없는 비명을 지른다.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셋을 바라보고 있다. 열이 치솟았다. 대체 왜 그래? 사람들도, 너도. 다 이상해. 이 주점에만 오면, 모든것이 미쳐버리는 건가? 나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낮게 위협했다. "눈 깔고, 고개 돌려." 스테이지 쪽에 앉아있는 녹색 [ 아니, 갈색인가? ] 머리카락의 녀석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의 앞에 앉아 있는 허니블론드의 남자가 손등으로 턱을 괴며 우리를 빤히 관찰한다. 그 노골적인 시선에 이젠 분노게이지가 한계치에 이르기 일보 직전이다. 하얀 머리카락의 웨이터가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퍼억- "가게에서 행패 부리지 말고, 이 손님과 함께 나가." 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한다. "그리고 왠만해선 다신 오지 마라." 그는 언제 잡고 있었냐는듯이 녀석의 손을 놨다. 그리고 묵묵하게 술병을 닦기 시작했다. 내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 내밀자, 그가 흘낏 나를 쳐다보면서 속삭였다. "별 시답잖은걸로 싸우고 지랄이야. 너 성격 개판이라는 말 자주 듣지?" "!" 이...개자식! / 집에서 / 생각해 보니 진짜 별 시답잖은 거다. 그 웨이터에게 동조할 생각은 없지만, 정말 별것도 아닌걸로 싸웠다. 칵테일을 뺏느냐 뺏기느냐. 양보해 줄걸. 고개를 푹 숙인채 집까지 온 녀석의 모습을 보자 한숨도 안 나온다. "왜 칵테일 끌어당긴 거야?" 그가 고개를 젓는다. 으음...또 화나려고 한다. "마시고 싶었어?" 도리도리. "...설마..웨이터가 내 칵테일에 이상한걸 넣은건 아니겠지." 그가 미쳤냐는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조금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다시 물었다. "그럼 왜?" 그가 작게 입술을 움직인다. "...." "....뭐라고? 못 들었어." "..." 안 들려 안 들린다구. 조금만 더 크게. 그가 약간 더 뚜렷이 입술을 움직인다. "...ㅇ.ㅜ..산." "...우산?" 우산? 잠깐, 그러고 보니. 녀석의 칵테일 위에는 분명히 분홍색 조개껍질이 달린 야자수가 있었다. 그럼 내 칵테일 위엔? 크어어억- 우산! 일본식 우산장식! 망할! 망할 나르시스! 어린애가 원하는 하나도 못 들어주고 지금 이 모양이냐! 저 어린애가 원한건 네 칵테일도, 네 칵테일 잔도 아닌 우산장식이었다고! 한숨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아아아..." 그가 약간 고개를 들면서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를 향해 한 발짜국을 내딛었다. 그가 흠칫 놀라며 뒤로 두 발자국을 물러난다. 그리고는 이내 벽에 부딪힌다. "하아." 한숨이 한번 더 흘러나왔다. 저런 어린애를. 저런 어린 애에게. 말도 못하는 저런 아이에게. 나는 뒤가 벽이라 어디도 가지 못하는 가엾은 어린 양에게 걸어갔다. 그리고는 움찔움찔 떠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럴 만도 하다. 처음으로 내가 화 내는 모습을 봤을 테니까. 비록 미치도록 화낸것은 아니지만 녀석에겐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 나와 그가 처음 만났을때도... 화난 사내에게 흠씬 얻어맞았으니까. 나는 허리를 굽혀 그와 눈 높이를 맞추었다. "...너 정말...." 그가 금방 눈물이라도 흘릴듯한 눈동자로 나를 쳐다본다. 남색빛 눈동자. 그 눈동자에 약간 지친듯한 내 모습이 비친다. 입에서 다시 한숨이 새어나왔다. 너무 어려. "앞으로 원하는게 있으면." 그의 눈동자가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고 눈 앞이 아찔하다. "말로 해." 그의 입 안에서 술향이 난다.. / 거실에서 / 그의 몸이 튕겨 올라간다. 그가 허리를 흔들며 눈을 감는다. 그의 하얀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다. 그의 손가락이 내 어깨를 세게 쥔다. 쇼파가 삐걱 거리는 소리를 낸다. 눈물이 내 손가락에 닿았다. 차가움. 그가 눈을 뜬다. 아픔 때문인지 눈물이 가득한 그 눈동자가 보인다. "...미..안...잠시만...참아." 내 입 사이로 거친 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 아침 / 날이 밝았다. 나는 무의식 적으로 내 옆에 누워 자던 꼬맹이를 찾았다. "야, 오늘은 네가 밥....어라? 어디갔담." 없어졌다. 이런, 젠장! 나는 벌떡 일어나서 (약간 괴로운 허리를 애써 무시하고 ) 집안을 돌아다녔다. "야! 야아-!" 어딨냐. 화장실, 부엌, 작은방. 거실과 베란다. 그리고 잡동사니를 넣어둔 창고. 아무 곳에도 없다. 설마...설마... 나는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퍼억- "컥-!" 눈앞에 별이 아찔하다. 빌어먹을! 현관문에 즉빵으로 찍혔잖아! 이를 갈면서 나를 현관문 모서리로 후려갈긴 놈을 노려봤... "..어라? 아침 부터 어디갔다왔냐?" 그가 생긋 웃는다. 그리고 손에 든 비닐봉지를 내게 내민다. 반찬거리 사 왔냐? 아이고, 이쁜것. 허리도 성치 않을 텐데. / 부엌에서 / 핫케이크 가루를 풀어 계란을 섞고 우유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막 우유를 넣으려는데.. "...너 우유 다 마셨냐?" 그가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한다. ' 나 안 먹었는데, 왜 없어졌을까? ' 라는 표정. 너 아니면 누가 마셨겠냐? 그리고 미성년자도 아니면서 우유는 왜 마셔? 키 클 나이도 지났잖아! 어쨌거나 마셨다고 해도 하필 요리용 우유를! 그가 내 팔을 친다. '우유 없으면 못 만드는 거야?' 당연하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식탁 위의 지폐를 집고서 슬리퍼를 신는다. 그리고 웃었다. ' 다녀올게요. ' 소리없는 인사. 하지만 그것에 이미 익숙해진 나는 손만 흔들 뿐. "어. 잘 다녀와. 빨리와라." 반죽이 이상해 지기 전에. / 한 시간 후 / ........이 녀석이 우유를 직접 만들어 오나! 썩을놈! 왜 아직도 안 와? 식탁위의 지폐 [ 무려 5 만원 ] 를 들고 나가더니만! 반죽이 엉망이 되어 약간 화난 상태로 머리를 밖으로 내밀었다. 대체 왜 안 오냐! 아무래도, 돌아오면 엉덩이를 때려주어야... 그때, 편의점 청년이 형광빛 노란머리를 날리면서 내게 달려왔다. "헉...허억..." "뭔 일 입니까?" 그가 내 앞에 멈춰서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뭔일이냐? "...크윽...아까...아니 조금 전에..." 그가 가슴을 쥐고서 숨을 헐떡거렸다. "....그 하늘새...색 머리 남자애."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이 집 ...맞..맞죠?" 헉헉 숨을 내쉰다. 그가 내쉰 숨이 내 가슴을 미치도록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무슨...무슨 일이지. "아까 조금전에 ....어..어떤 남자들에게..." 머릿속이 웅웅 울린다. 눈이 미칠듯이 아프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초조하고, 미치도록 숨이 막힌다. "무슨..." "....남자들에게 납치 되었다구요!" 그 대로 나는 집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가게앞으로 달려갔다. 숨이 찬다. 신발도 신지 않은 맨 발에 아스팔트가 거칠다. 부셔진 병 조각에 발이 찢겼다. 차들이 내 주위로 달린다. 가게안은 온통 엉망이었다. 부셔진 계산대, 엎어진 진열대.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수많은 물건들. 그리고 그 가게 바로 앞에 떨어진... 바로 앞에 떨어져 있는 ... 숨이 가빠왔다. 우유. 그리고 녀석이 손에 꼭 쥐고 있던 지폐. 우유는 바닥에 떨어진 충격으로 터져있었다. 웃음밖에 안 나온다. 머릿속이 하얗다. 어느새 달려온 청년이 내 손에 명함을 쥐어준다. "이거...아까 그 남자분들이 전해달라고." 힘주어 잡았는지 꾸깃한 명함. 나는 그 명함을 아예 구겨버렸다. ------------------------------------------ ==================== 나르시스의 시점 ====================== 커다란 문. 두꺼워 보이는 문짝. 엄청난 높이와 넓이를 가진 대문 앞에 나는 서 있다. 이 문짝을 부수고 들어갈 것인가 아닌가를 고민하며. 녀석을 납치해 간 놈이 여기에 있단 말이지? 나는 머릿속에 명함의 내용을 떠올리면서 짙은 밤색의 그 문을 노려보았다. 『 조직폭력단 - Karee - 루이스 총수(總帥)』 그리고 명함의 뒷 면. 『 청하로(路) 제 23 번지 』 빌어먹을 청하로. 내가 그 길 이름을 찾느라 수십동네는 다 뒤진걸 생각하니 저기 붙어있는 표지판을 갈아마시고 싶다. 빌어먹을, 이걸 찾느라 100 곳 이상은 다 뒤진것 같다. 청하로? 청하로? 한국에 그런 곳은 없다. 적어도 내 상식으로는! 하지만 빌어먹게도 2005 년도에 새로 생긴 도로, 그것이 청하로였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믿고 기대고 또 몇일간 손에서 놓지 못한 전국 지도. 내가 녀석을 찾느라 시력 하나에 의존해 지도에서 찾아야만 했던 그 도로. 그 도로는 전국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 2002 년 판이었으니까! 제기랄! 아주 아스팔트에 뭉개버리고픈 마음이 절로 솟아오른다. 그건 그렇고... 조직폭력단. 너무나 건전해 보이는 - 그러나 무지막지한 크기를 자랑하는 - 이런 건물에 조직폭력단이? 한국의 폭력단은 어떤 거지? 갱 같은 건가? 마약이나 총을 밀매, 혹은 밀수입 하는 그런 거? 카지노를 점령한 그런 인간들을 말하는 건가? ( 뭔가 좀 틀려! ) 나는 혹시 몰라서 준비한 권총을 손으로 꼭 쥐었다. 나를 죽이려 하기 전에 먼저 총을 쏘아야지. 그런데 내가 당하게 되면 소리소문 없이 산에 파묻히는 걸까? 아냐, 더 지독해서 갈기 갈기 찢은다음 가축사료에 섞어버릴지도 몰라. 아니면 새우잡이 배에 팔아버릴지도... 으음...이거, 경찰 끌고 나와야 하는거 아닐까. 슬슬 불안해지잖아. 조직폭력단의 집이 이렇게 조용하다니. 나는 뒤를 돌았다. 깨끗한 아스팔트의 도로. 차들이 가끔 훼엥- 하는 바람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참고로 길거리에는 나 밖에 없다. 혼자만 덩그러니 저택 앞에 서 있으니까 왠지 추운 기분이.. 휘이이잉- 아닌게 아니라 바람이 무척 찼다. 훌쩍. 빌어먹게도 춥구만. 콧물을 훌쩍이면서 - 또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 나는 그렇게 서 있었다. 개에게 던져줘도 시원치 않을 눈송이들이 하나 둘 떨어지기 전 까지는! 크억, 춥잖아. 이제 더이상 못 견디겠다. 돌아가거나, 아님 들어가거나. 둘중 하나야, 나르시스. 양자택일! 하지만 남자라면 모름지기 무라도 배야 하는 법! 그것이 애인의 목숨- 혹은 정조 -이 달린 문제일 경우엔 더! 거대한 대문에 위압감을 느끼며 나는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 다시 한 발짝 물러섰다. 무, 무섭다구! 난 일반인이야! 나더러 뭐라고 하지 마! 난 이제까지 법을 어긴적이 없는 평범하고 건전한 시민입니다. ......그런 내가 빌어먹게도 조직폭력단과 맞서야 하는 상황에 이르다니. <- 이 녀석 무지 앞서가고 있군 - 이라고 신들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세상아, 망해버려! 나 같이 착한 사람이 저런 나쁜 엉아들과 엉기게 되다니! 비록 나는 조금 카사노바 이긴 했지만 그래도 착하고 양심있는 선량한 시민이란 말이다! 갑자기 떠오른 억울한 마음에 돌아설까 생각 하다가 눈물 고인 그의 눈이 생각나 그만두었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손을 들어올려 초인종을 눌렀다. 죽던 살던 해 보잔 거야. 이제. 아니, 이제 난 몰라. 알아서 되겠지. 크윽...죽을람 죽고 살람 살아라. 신들, 댁만 믿겠어.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끝난 드라마에서 나오는' 죽고자 하면 살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것이다- ' 라는 유명한 대목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런 소리도 용기가 있어야 하지. 난 용기같은거 모르니까, 목숨이나 부지하게 해 다오. 문 안 쪽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갑니다." 얼핏 들으면 빈정대는 것 같기도 하고 능글거리는 것 같기도 한 목소리. 약간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어. 하기야 원래 그리 좋았던건 아니지만.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구그그그긍 다른 문들이 삐걱 하면서 가볍게 여닫히는 것과 달리, 이 빌어먹을 대문은 돌이 돌 바닥과 마찰되는 소리를 내며 힘겹게 열렸다. 돌덩이를 깎아 만든 거 아냐? 문이 반쯤 열리는 순간, 내 눈 속으로 붉디 붉은 옷자락이 들어왔다. "어,...어라?" 붉은 비단? 왠 붉은 비단이? 그리고 왠 쌍 검이! "잠시만요." 갑자기 등장한 그 ' 이상한 붉은 옷 ' 이 말하면서 힘을 조금 더 주었다. 물론 나는 패닉상태였고. 지금 21 세기 맞지? 응? 문을 완전히 벽으로 밀어붙인 그 ' 붉은 비단 ' 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는 신음을 흘렸다. "으윽!" 커억- 저 얼굴에서 찬란히 내뿜어지는 빛이 내 눈을 쏘고 있어! 저 놈은 누구냐! 사내가 허리에 손을 얹으며 킥 웃는다. "누구냐, 넌?" 그건 내가 해야 할 말이다. 내 대사를 가로채여서 약간은 당황한 표정으로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눈, 눈부셔! 깨끗한 피부. 길게 찢어진 눈초리. 고집있어 보이는 입술. 그리고 반을 묶은 검은 머리카락. 우와, 대단한 미남. 그런데 왜 21 세기 한국에서 왠 붉은 비단옷? 혹시... 흰집의 거주자?! 스스스슥 물러나는 내 모습을 보고는 그가 ' 너 어디서 도망왔냐 ' 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나, 나는 퇴원 한지 오래야! ...가 아니라! "누구냐? 너? " 그가 입술을 삐죽이며 물었다. "나, 나르시슨데요." "나르시스?" 그가 내 몸 구석구석을 훑어본다. 아주 흥미롭다는 눈초리로. 그러더니 내 가슴에 손을 탁 얹는다. "!!! 지금 뭐하는 거...!" " 몸매 한번 근사하군. 얼굴도 제법 반반하고." 그리고는 나를 사납게 노려본다. "들어와,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가 대문 안으로 한 발을 들여놓았다. 내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초리가 무시무시해 보인다. "얼른!" 그런데 그 날카로운 얼굴이 새 같다고 생각한 건..내 착각이었을까? / 정원에서 / 검은 옷을 입은 떡대들이 척 척 척 걸어나온다. 그리고 아름다운 정원을 망치는 목소리로 - 또한 아름다운 내 눈을 썩게하는 모습으로 - 고함치며 인사를 한다. "손님이십니까!" 그가 권태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면 모르냐. 형수님 손님이다." 형수님? 설마 내가 건드린 여자 중에 조직의 여주인이 있었던 것은...? 아니야, 그럴 리 없어. 화인이 은수 지원이 아영이 지희 등등은 평범한 일반인 이었다고! ' 혹시 모르지, 또. 정체를 숨겼다면...' 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세게 내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나는 여자에 관해 천재적인 감을 가진 놈이란 말이다! 물론 남자- 다른 말로 하자면 인생에 도움이 안돼는 종족- 에게는 감을 가질 필요성도 못 느끼지만. "뭐해? 얼른 들어와." 그가 난폭하게 손짓한다. 나는 그를 따라서 머뭇머뭇 그림자가 드리워진 문 안으로 들어왔다. 찬바람 휭휭 불어와도 꽃 피어있는 정원의 모습이, 문이 닫힘과 동시에 사라졌다. 콰앙- 그리고. / 응접실 / 내가 그의 인도를 받아 도착한 곳은 응접실. 어떻게 알았냐고? 문에 화려한 글씨로 써져 있었으니까. 어쨌거나 두꺼운 벨벳으로 만든 쿠션, 쇼파, 금실을 섞어 짠 태피스트리 등 비싸 보이는 것들이 가득한 공간으로 나는 내던져 졌다. 진열장의 도자기. 비싼 청자와 백자. 서양식의 의자와 페르시아의 양탄자. 돈 쳐발랐구만. 내 입에서 이런 소리까지 나올 정도면 엄청 난 거다. 내가 돈으로 바른 집도 꽤나 많은데 그 집을 다 합쳐도 이 응접실만큼 비싸지는 않을 것 같다. 문에서 잘 보이지 않는 저 구석 - 이라고 말하는건 사실 옳지 못하다. 이 방이 워낙 크니까 - 에서 누군가의 머리가 쏙 올라왔다. "... 안녕?" 그가 히죽 웃는다. 하얀 머리카락. 수, 술집의 웨이터! 당신이 왜 여기에? 누군가의 머리가 그의 머리 옆에 또 솟아오른다. "우리 어제 만났지?" 허니블론드. 그가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저 화려한 금발머리는 너무나 잘 기억된다. 어제 술집에서 나를 지금과 꼭 같은 눈초리로 쳐다본 남자. 그 남자를 따라서 옆에 두명이 솟아오른다. "왔네?" 빈정거리는 투. 입술을 삐죽이는 남색머리카락. 저번에 내 비싸디 비싼 수트에 발자국을 남겨놓은 그 자식. 보자마자 이가 갈리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한 놈이 웃고 있다. "늦었어." 형광색 금발. 저 저놈은! "앗, 편의점 청년!" 무의식 적으로 외쳐버렸다. 그러자 방 안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편의점 청년이랜다." "오우, 브라보." "딱 어울리는구만." 허니블론드가 웃다 말고서 내게 손짓했다. "이리와." 나는 무의식 적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그때, 갑자기 문이 열렸다. 흠칫. 뒤를 확 돌자, 그 곳에는 녹색머리카락의 청년이 그 길고 고운 머리카락을 날리면서 서 있었다. 누구야, 넌? 이상한 놈. 그거 가발 아냐? "안녕." 그가 서늘한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면서 인사를 건넸다. 저기, 인사는 좀 고운 목소리로 하는 거라고! 미간을 그렇게 일그러 뜨린 채로 ' 안녕 ' 이라니! 하지만 불쌍한 소시민인 나로서는 몸에 배인 그대로 손을 흔들었다. "하이." 다행스럽게도 그런 내 반응에 - 꼭 조폭 대가리 처럼 보이는 -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곤 척척척 걸어서 가장 가까운 쇼파에 앉아버린다. 허니블론드가 쇼파에 팔을 걸치면서 녹색머리에게 손을 흔든다. "루이스, 카르는?" "오겠지." 약간 심통난 표정으로 녹색머리가 대답했다. 그리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덕분에 나는 그를 관찰할 기회를 얻었다. 날카로운 콧날. 남자다운 입술. 꽤 성질 있어보이게 만드는 눈썹.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아리따우신 머리카락. 정말 미남이다. 그런데 어째서 아까 그 붉은 옷도 그렇고, 하얀 머리도, 허니블론드도, 남색 머리도, 편의점 청년도 전부 잘생긴 거지? 나는 미남만 모여있는 이 저택의 미스테리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는것을 느꼈다. 문이 다시 열렸다. 그 안에선... "오랜만이군." 쌀쌀맞은 말투의 사내. 누구세요? 나도 모르게 쫄았다. 사내는 근육이 잘 잡힌 몸을 검은 수트로 감싸고 있었다. 사내의 다크 블루의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리면서 그 사이로 보랏빛 눈동자가 드러났다. "내가 누군지 궁금하지?" 그의 입술 사이에서 매혹적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솔찍히, 예. "누군데요?"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 라는 속담도 있지만 빌어먹을 내 입은 이미 말을 나불거려버렸다. 사내가 웃는다. "영어선생이다. 이름은 유.민.혁. 외울필요 없다. '그' 를 제외한 남자가 외워봐야 기분만 더러우니까." ....잘난척 하기는. 그건 그렇고, '그'? 사내가 다시 웃었다. "날 기억 못하나 보지?" 난 원래 남자 기억 못해. 라고 점잖게 이야기 해 주려고 고개를 들다가 문득 기억 이 나 버렸다. 맨 처음에 술집에서 녀석을 패던 사내! 바닥으로 녀석을 던져버린 그 놈! "다, 다, 다,다, 당신으으은!" "기억력이 나쁘군." 난 원래 남자에 관심 없어!...가 아니라! "왜 여기에!" "조금만 기다려, 이쁜이." 그가 킬킬거렸다. 이쁜이? 제길, 어머니. 천하의 나르시스가 졸지에 이쁜이가 되어버렸어요. 잘 단련된 내 몸매가 서러워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왜냐! 저 무례한 사내의 몸매에 밀렸으니까. 크윽, 내일 바로 헬스다. 다시 문이 열리고, 하얀 비단 옷을 입은 사내와 연하게 탈색된 머리카락을 가진 사내가 들어왔다. 아니, 왜 이리 남자들만 바글거려? "오랜만, 백호." 다크 블루 머리칼의 사내가 손을 흔들었다. "요즘 바빴다면서?" 하얀 옷을 입은 청년이 대답했다. " B.D 의 일이 좀 많아서.." 옥빛 머리카락을 가진 사내가 웃어댔다. " 그러면서도 꼬박꼬박 밥은 잘 챙겨먹었잖아!" 하얀 옷의 청년이 반박했다. "그건 '그' 가 내 몸이 너무 약하다고 잘 먹으라 했기 때문에!" 푸른 머리카락의 청년이 능글거린다. "정말..? '그' 가 그렇게 말했어? " 또 나왔다. ' 그 ' 란다. 뭔가 있어, 이 거대한 저택에. 무시무시한 뭔가가... "저, B.D. 가 뭔가요?" 내 입이 또 나불거리고 말았다. 이걸 그냥 조져버려야! 이따 화장실에서 보자꾸나, 내 혀야. 푸른 머리카락의 사내가 나를 쳐다본다. "너 바보?" "....아닙니다만." "그럼 장애인이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너 문명인 아니지?" "어엿한 문명인의 자손입니다만." "그럼 넌 정체가 뭐냐, 너 두메산골 너구리냐?" "....아닙니다만!" 뭡니까, 이 이상한 물음들은? 푸른 머리칼의 청년이 의아하다는 투로 물었다. "어떻게 나를 모를 수가 있지?" "알겠냐! 내가 남자를 알게 뭐야!" "오오, 그건 그렇군." 그가 맞장구를 치더니 황당하다는 눈길로 바라보는 하얀 옷의 청년을 무시하고 팔짱을 척 꼈다. 그리고는 거만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BLUE DRAGON. 짧게 줄여서B.D. 라고 부르도록." "블루 드래곤..?" "청룡이란 뜻이다. 너 설마 서양인이면서 그것도 모르는건..." "알아, 알아, 안다고!" 그런데 내 궁금증은 왜 그런 이름이냐는 거야! 그때, 이런 별 쓸모없는 이야기들을 끝내버리고 싶은 모양인지, 문이 열렸다. 문 사이로 드러난 검은 옷. 검은 머리카락. 아까 유..유....에라 모르겠다. Mr. 유 라는 사람보다 훨씬 몸매가 죽여주는 사내가 들어왔다. 고혹적인 눈매와 날카로운 턱선이 매력적인 사내였다. " 이제 왔냐? '그' 는?" 자칭 블루 드래곤, 즉 청룡이라는 놈이 물었다. 새로 등장한 검은 놈이 입을 열었다. "'그' 는 황제와 오겠다고 했다." 오오, 목소리 죽인다. 낮은 바리톤. 그 차분한 음성에는 감정이 일절 섞여있지 않았다. 인간 같지 않은 목소리... 미치도록 나른하다. 전설의 세이렌이 이러했을까. "황제? 너 아직까지 그 놈을 황제라 부르냐?" 청룡이 기가막히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거무스름한 놈이 대답한다. "그럼 뭐라고 부르지? 사법고시 3 수생?" 빨간 비단옷이 킥킥거린다. "그 거 좋네." 청룡이 기운빠진 목소리로 응수한다. 문이 다시 열렸다. / 만나다. / 남색 머리카락. 아름다운 남색 머리카락이 물기에 젖은채 추욱 늘어져 있다. 커다란 눈동자 역시 머리카락과 같은 남색이다. 아름답다. 하얀 피부. 긴 속눈썹이 그늘을 드리운 그 하얀 피부는 티 없이 깨끗했다. 붉은 비단옷의 피부도 고왔지만, 이 것은 그 보다 2 배는 더 곱다. 하지만 그 모든것을 제쳐두고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너..왜 여기에?" 녀석이었다. 하늘색의 머리카락이 아니라 남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지만, 틀림없는 녀석이었다. 녀석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잠시 우리 사이에 침묵이 맴돌았다. 그러나 그 침묵은 그로 인해 깨졌다. "당연히 납치되었으니까 여기에 있지, 바보야." 그가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말했? 너, 목소리가?! 청아하고 아름답고 그러면서도 섹시한..등등의 수식어는 제껴두고! 어찌하여 목소리가 있는 것인가! "너, 말할수 있었냐?"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그가 녹색머리 청년의 무릎에 털썩 앉으며 대답했다. "그럼 벙어린줄 알았냐?" 녹색 머리칼의 청년이 그의 허리에 손을 감는다. 크윽, 저 손을 태워버려야! 감히 어디에 손을 얹어! 내 생각이 어떠하던 내 입에서는 말이 술술 튀어나왔다. 언젠가는 꼭 혀를 잘라버리겠어. "말 못하는줄 알았는데." "그리고 너는 그 모습을 좋아했지." 녀석이 손을 탁자위의 담배로 손을 뻗는다. 몸에 나빠! ...라고 하지만 나도 피우니까 참견하지 말자. 그가 무심하게 말을 이으면서 담배 한개비를 꺼냈다. "너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지? 나르시스?" 그의 눈에 웃음이 어렸다. 재미있다는 투. 그 말이 끝나자 녹색 머리카락의 청년이 눈을 뜨면서 미소지었다. 그리고 허니블론드가 미친듯이 웃어제꼈다. 다른 사람들도 역시. "큭큭.." "저 녀석 주머니에 든거, 총 맞지?" 흰 머리의 놈이 내 주머니를 똑바로 가리키며 웃는다. 어떻게 안 거야? "...겁쟁이." 다크블루 머리카락의 사내 ' 자칭 영어선생 ' 이 비웃었다. "평범한 소시민한테 뭘 기대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붉은 옷의 청년이 그의 말을 반박한다. "저 얼굴이 평범한 소시민 얼굴이냐? 저 녀석 잘 나가는 모델이라고." 그리고는 나를 평가하는 눈으로 쳐다본다. "겁은 좀 있는것 같지만. 하기야 없으면 무생물이지. 저놈처럼." 그가 손가락으로 거무스름한 놈을 가리킨다. 거무스름한 놈은 작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돌린다. "어쨌거나 지금은 상관 없으니까." 사람들이 모두 웃고 있다. 녀석의 입가에도 웃음이 번져 있다. 나만 화가 나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 나를 속인것? 어떻게 된 거지? 화난다. 미치도록 화 난다. " 화 나지?" 또렷한 목소리가 내 정신을 파고들었다. "응?" 녀석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화 나냐고." " 안 나." 거짓말을 뱉었다. 그가 잠시 말을 하지 않다가 다시 입을 벌렸다. "거짓말." 녹색 머리 사내가 그를 거든다. "표정 보니까 알겠어. 화났지?" 네 입만 닥쳐줘도 좀 덜날 것 같다. 녀석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화 났으면 화 내. 나는 화 안 낼테니까." "너가 내면 적반하장이지." 약간 열이 뻗쳐서 그렇게 대답했다. 그가 작게 웃었다. "나르시스, 삐졌구나." 그 말에 내 수트에 발자국을 낸 남색 머리카락의 청년이 웃는다. "계집애 같긴." 닥쳐라, 소년이여! 나보다 더 어린게! 척 보기에도 어리구만! 하기야 소년이라고 할 나이는 지난것 같지만..알게뭐냐. "안 삐졌어." "삐졌으면서." "안 삐졌어." "정말?" "그래." 나는 이 한심한 대화를 끝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리하여 말을 꺼냈다. "여긴 어디지?" 나는 속으로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 그리고 너는? ' / 한참 뒤 / "내 이름은?" "카르이자 지민이자 성유. 현 이름은 지민." 나는 한참 동안 자칭 '세계에서 가장 예쁘고 아름답고 섹시한' 지민이라는 녀석의 신상명세를 듣고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내 천재적인 머리로 그 복잡한 것들을 다 외워버렸다. 으음, 어머니께서 항상 하시던 아이큐 150 은 거짓이 아니었어. < -그 앞의 마이너스는 살짝 빼먹는 나르군이었습니다- 라고 신들중 하나가 노래불렀다> 아유, 이쁘기도 하지. 내가 이따가 예뻐해 주마, 내 뇌세포 들아. 내 오락가락 하는 정신을 알아채지 못한 자칭' 카르이자 성유이자 지금은 지민' 인 녀석이 다리를 꼬면서 물었다. "성은?" "김." 꼬박꼬박 대답하는 내 입, 예쁘기도 하지. "나이는?" "약 23 살." 아아, 살짝 내 턱을 받히고 있는 손도 참 고와라. ...가 아니지! 빌어먹을 나르시즘! 아직도 없어지지 않았단 말이냐, ..가 아니라 지금 왜 나와서 정신을 더 산란하게 만들어?! "직업은?" "조폭마누라." 뒷통수가 화끈하면서 눈앞에 별이 반짝였다. "뭐야!" "조폭마누라가 뭐냐, 조폭마누라가. 한국인도 아닌게 입 한번 걸쭉하구만." 녹색머리의 청년이 주먹으로 내 머리를 갈긴 것이었다. 썩을, 왜 때리고 지랄이여. 그가 나를 내려다 보며 명령조로 말했다. "넌 여기의 말단, 존댓말 쓰도록. 카르를 형.수.님. 이라고 불러라." "내가 왜?" 니가 내 형이냐? "말단이라고 했잖냐." "누구 맘대로 말단이래?" 나는 여기가 어딘지에 대한 설명은 못 들었다고. 최강수 꽃수 천의 얼굴을 가진 수 에 대한 설명과, 지민이라는 녀석을 제외한 사내새끼들이 떠드는 ' 최강공 냉혈공 능글공 바보공 등등' 에 대한 이야기만 뇌세포가 압사하도록 들었으니까. 고막이 터지겠어. 더이상 그 이야기들은 내 달팽이 관이 받아들이지 않아. 애초에 귓바퀴가 소리를 모을 생각조차 하지 않아! 질리도록 들었다고! ㅅ 이나 ㄱ 만 나오더라도 이젠 아주 그냥 치가 떨려! 그건 그렇고 여긴 진짜 어디냐?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여긴 어디지?" 루이스 씨라고 자신을 설명한 - 그러면서 마스터라고 부르라고 한 - 녹색머리 청년이 씨익 웃었다. 그리고 내 멍한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송곳니가 빛에 반짝 빛났다. 그는 두 팔을 활짝 벌렸다. "하렘에 온 것을 환영한다! " =================== 루이스의 이야기 ========================= 내가 누구냐고? 내 이름은 루이스. 판타지 세계에서의 왕자다. 물론 왕위까지 올랐었지. 나이는...묻지 말거라. 신체상황이야 28 살의 나이를 마지막으로 멈춰버렸다고 하지만 - 노화도 멈추었음 - ....나이는 멈추는 것이 아닌지라.. 그리하여! 내 나이는 넘어가자. 난 잘생겼다. 하렘에서 최고의 미남...이라고 하고 싶으나, 다른 놈들 역시 반질반질 하게 생겼으므로 넘어가도록 하자. 특이한 점이라곤 녹색인지 갈색인지 애매모호한 빛깔을 가진 내 머리카락과 눈이 아닐까. 내 양아들 - 이었지만 지금은 동생인- 카이스의 눈 색과 똑같다. 참고로 키는 늘씬하고 신체 사이즈는.... 그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면 남들이 나를 부르는 칭호를 알려주도록 하지. '화나면 얼음이요 평소에는 자상이라' 나는 페미니스트! 라기보다는 신사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니 부끄럽군. 그래도 사실인걸? 어쨌거나 그렇게 잘난 나는 나보다 더 잘난 카르군에게 코가 꿰여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놈의 돈줄이자, 남편이며, 보호자다. 내게 그놈은 애인이며 주인이다. 하여튼 내겐 그놈이 소중하다. 그런 그놈이 어느 날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내게 부탁을- 이라고 쓰고 명령이라 읽는다 - 했다. "나, 가지고 싶은게 있어. 도와줄 거지?" 그때 왜 나는 하필 ' 꽃 ' 이라고 알아들었을까. "어떤 꽃인데?" "나르시스." 그래, 이 대목이 잘못이었어. 이 대목이 다른 식으로 해석이 되는 줄 알았더라면 기필코 반대를 했을 것이다. 어쨌던 나는 녀석이 평소에는 잘 쓰지도 않는 영어를 쓴다는 사실에 경악하면서 대답했다. "수선화? 너 말라죽일라고?" "잘 키울게." "그렇게 갖고 싶냐?" "내가 가장 예쁜 놈을 찍어놨거든. 그 몸매가 죽여." 그때 왜 나는 그 몸매를 단순히 꽃대 라고 생각했을까. 지금 생각하니 내 뇌를 꺼내서 전자렌지에 데워버리고 싶다. 어쨌던 그날로 카르는 신들의 가호를 받은 몸으로 '귀하디 귀한 꽃' 을 손에 넣기위해 떠났다. 물론, 나는 그게 꽃이 아니라 '남자' 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고. 하지만 녀석이 내민 한장의 악마같은 종이쪼가리- 다른 말로 하면 각서 - 의 계약으로 인해 알게 된 후에도 거부할 권리가 없었다. 여하튼 녀석은 사모예드가 경영하는 술집에서 청룡 대신에 노래를 불렀고, 유민혁 성격파탄 영어선생에게 처절히 얻어맞았다. 물론 이것은 다 연기고 짜고 치는 고스톱. 하지만 녀석이 노리는 '꽃' 은 순진한 구석이 있어서 그것을 그냥 믿어버리고 여우같은 '녀석' 을 데리고 사라졌다. 그후 내가 아는 바로는 '여왕님과 시종놀이' 를 좀 즐겼지. 물론 본인이 즐긴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후 카르와 나르군의 사랑을 - 물론 카르의 꼬심과 나르군의 순진한 넘어감을 - 거의 체념 상태로 도와주는 우리. 하지만 그 중에서도 카르랑 나르군이 롯데월드에 놀러갔을때가 우리 - 하렘의 남자들 - 가 가장 많이 활약했던 때이다. 왜냐고? 사람들에 치이지 않게 다른 이벤트로 사람들의 이목을 돌리지, 녀석들이 유유히 놀이기구를 탈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이사람 저사람을 마비시켜 다른 곳에 떨궈놓았다. 또한 카르군이 한 편의 영화를 연출할때 다리 밑에 숨어 비둘기를 날린것도 우리였다. 물론, 눈오는 날에 구름이 개이고 해가 드러난 것은 신들의 연출이 컸겠지만. 넘어지지 않게 녀석이 뛸 자리의 눈을 치워 놓은 것도 우리다. 로맨틱한 곳에 쓰레기는 어울리지 않으므로 몇명은 하루종일 쓰레기를 주웠다. 또 녀석들에게 추파를 보내지 않도록 (혹은 싸인해달라고 난리치지 않도록) 여성들을 정리해 놓은 것도 우리였다. 으음, 정말 힘든 하루였지. 또 녀석들이 쇼핑할때 가게마다 들려서 '야릇한 눈길 보내지 마라'라고 주먹으로 협박해야 했으니까. 뭘 그리 빨빨대고 돌아다니던지. 하지만 하다 보니까 재미가 붙었다. 뭐랄까...불쌍한 어린 양을 늑대의 아가리로 밀어넣는 기쁨? 아니면 같이 죽자는 물귀신 작전? 하여튼 그런 순진하고 불쌍한 중생을 하렘으로 밀어넣기 위해 우리는 온갖 발악을 다 했던 것이다. 가장 힘이 든 것은 카르의 고속질주였어. 그 녀석 약해뵈도 운전대만 잡으면 눈이 홱 돌아가는 녀석인데. 나르 그 미친놈이 녀석에게 운전대를 뺏길때, 나는 정말 죽고싶었다. 만약 내가 조직애들 풀어서 도로 정리 시키지 않았더라면 나르군과 카르는 이미 황천길에 올라 있었을 것이다. 아니, 지금쯤은 환생 했을려나. 어쨌던 그게 문제가 아니고! 가장 쉬웠던 것은 마지막의 납치장면. 그냥 가계좀 부셔놓고 리무진으로 카르를 모셔가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가게 앞에 용의주도하게 우유와 지폐도 떨어뜨려 놓았다. 누가 보라는 듯이 떨어뜨려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나르녀석, 그걸 믿다니. 순진한 놈. 지폐를 떨어뜨려 놓았는데 아무도 안 훔쳐간 것에 대해서 전혀 궁금증을 느끼지도 못한다. 상당히 뇌가 없는 녀석. 하기야 신들이 몰래 말해준 바에 따르면 그 어머니께서 녀석을 눈치 -150 지능 -150 이라 불렀다니까 오죽 하겠냐만은. 부모가 그렇게 부를 정도면 심각한 건데. 하여간 나르군은 간악한 카르군의 손아귀에 걸려들어 하렘의 말단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소리. 물론, 덤으로 녀석의 비싼 차도 들어왔다. 오오, 내가 애용해 주마, 이쁜것. 그럼 나는 카르랑 드라이브나 가 볼까. ======================= 나르시스의 시점 ================================= 죽고싶다 죽고싶다 죽고싶다... 나는 하얗게 굳어버린 인간들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 조용한 침묵 뒤에 올 지옥을 예상했고, 그 지옥도는 그대로 들어맞았다. "우헤헤헤헤헤헷- 나아, 자알, 나암 이라고오오오?" "으하하하하하- 나잘남이래, 나잘남!!" 크억, 지붕이 웃음소리로 들썩거린다. 순간 나는 휘청이는 것을 느끼며 가까스로 쇼파 팔걸이를 손으로 붙잡았다. 아아, 머리아파. 내가 이런 인간들과 무사히 살 수 있을까. < 한편 날아가던 비둘기께서 갑자기 들려오는 비명같은 웃음소리에 추락사를 당했다는 - 심장마비던가? - 거짓말 같은 사실이 이곳저곳에 퍼지기 시작했다. 믿거나 말거나. > "웃지마라, 애가 놀라잖냐." 그래, 너 밖에 없어. 나는 감동으로 인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지민이를 쳐다보았다. 사랑해, 지민아. 언제나 네게 충성할게. 녀석이 유난히 이뻐보인다. 지민이가 팔짱을 낀 채로 다리를 꼬며 냉담하게 말을 이었다. "하기야 얘가 놀라거나 말거나 별 상관 없는 일이지." 나아 쁜 놈! ============= 지민 - 이자 카르이자 성유 - 의 이야기. 에필로그...================== 그리하여 인간들은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고 하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다들 예상하는 바와 같이 녀석들은 눈을 뜨자마자 싸우기 시작하여 잠들때까지 싸웠다. 싸우는 것들도 거의 정해져 있는지라, 주로 나르군과 내 아들 카이스. 나르군과 유민혁 - 성격파탄 영어선생 - 선배. 나르군과 사모예드씨. 후우, 매일 중제하는 나만 힘들다. 요즘 루이스씨의 눈 밑이 시커먼것과 그것과 관련있을 것이다. 아마 힘든 거겠지. 후우, 내몸 챙기기도 힘들다. 어찌되었거나, 멀리서 사람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드라이브 가자!" 그럼 지금부터, 멀리로 떠나볼까. 앞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렘 건설을 위해 열심히 달리자! 그럼 마지막으로 내 동지들에게 한마디. - 야오이에 대한 야오이에 의한 야오이를 위한 그런 하렘을 건설하겠습니다!- 선서! 환생이야기 ---------------------------------------------------- 추운꽁트. 카르: 안녕하세요. 루이스 : 안녕하십니까. 나르군 : 안녕하냐. [빠악] 나르군 : 왜 나만때려! 루이스씨 : [ 담배를 꼬나물며 ] 네가 인간적으로 정신 연령이 제일 어리잖냐. 나르군 : [억울하다는 투로] 그럼 사모예드는? 루이스씨 : 그녀석은 제외해. 개 [犬] 과니까. < 마신 변호사의 추운 변호일기 > 손님1 : 안녕하세요, 여기가 마魔신神 님의 변호실인가요? 마신 : 화장실입니다. 손님1: [뒤돌아 나가서 표지판을 확인한후 돌아온다] 변호실 맞는데요? 마신 : 누가 변호실 아니래요? 손님2 : 여기 마신 변호사 사무실 맞죠? 마신 : 팻말보면서 그런 소리 하시면 난감합니다. 손님 3 : 자네에게는 사람을 춥게 만드는 재능이 있어! 어떤가, 이번에 개그맨으로 나가보는 것은? 마신 : 에어컨은 끄고 말할까요. 손님 4 : 정말 잘생기셨군요. 마신 : 눈은 뜨고 말하십시오 ※ 주 : 이 손님은 살집에 눈이 묻혀있다 손님 5 : 이겨서 제 돈을 꼭 돌려주세요! 마신 : 제가 안 꿔갔거든요? 손님 6 : 뭘 좋아하세요? 마신 : [히죽] 사다주시게요? 손님6 : 사올 용의도 있어요♥ 마신 : 카르의 엉덩이..사오기 힘들걸요? 손님 6 : [짜악-] 손님 7 : 제게 뭐가 부족하길래 남편이 떠났을까요? 마신 : 돈, 얼굴, 집...다 부족하지만 역시 개념인것 같군요. 손님 7 : [짜악-] 손님 8 : 썰렁하다는 소리 안 들으세요? 마신 : 원래 이 방이 좀 춥습니다. 손님 9 : 예쁜 남자애를 만났는데 걔가 호모래요, 어떡할까요? 마신 : 잡아먹고 보십시오. ※ 손님 9 는 남자이다